'홈쇼핑' 뛰던 서울대 법대 수석, 유럽에 원전을 수출하다 [김인엽의 대통령실 사람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한진해운 사태 범정부TF 맡아 위기 수습
尹 인수위 복귀에 '국정농단 관여' 논란도
기재부 요직 거치고 '닮고싶은 상사'로 꼽혀
조국·나경원 등과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
홈쇼핑 '명절 대책 세일즈' 좋은 평가 얻기도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 2016년 10월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한진해운 관련 합동대책 제18차 T/F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한진해운 사태 '구원투수'로 급파된 기재부 1차관

2016년 4월, 대한민국 최대 해운회사였던 한진해운이 경영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산업은행에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경영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간 온 나라를 흔들었던 한진해운 사태의 시작이었습니다. 한진해운이 구조조정의 급류에 휘말리자, 해운업 전체가 그 여파에 출렁였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그해 6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급변하는 국책은행과 조선업계 상황을 주도하지 못하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못 했다는 게 세간의 평가였습니다.

정부는 한진해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구원투수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바로 해운업위기 정부 합동대책 TF(태스크포스) 공동팀장을 맡은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입니다.

최 차관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태평양 각지의 한진해운 소속 선박들이 미국·인도·동남아·서남아 등 거점 항만에 긴급 하역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 선박들은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이 하역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공해를 떠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최 차관은 약 20차례에 걸쳐 TF 회의를 열고 수습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진행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매일같이 기자단 브리핑을 갖고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브라운 백 미팅(간단한 점심을 겸한 기자회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황을 공유했고 하루에도 여러 차례 언론을 만났습니다.

한진해운이 결과적으로 파산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다만 당시 정부 수뇌부의 결정과 별개로 최 차관이 혼란상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공직에서 물러난 최 차관은 그로부터 5년 뒤인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로 임명됐습니다. 두 달 뒤에는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임명돼 화려한 부활을 알렸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다시 기재부가 맡은 '경제 컨트롤타워', 관가는 '반색'

관가는 대체로 최 수석의 귀환을 반겼습니다. 김수현 장하성 김상조 등 교수 출신 정책실장보다 관료 사회를 잘 아는 인사가 돌아왔다는 이유가 컸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교수 출신 정책실장들은 관료에 대한 불신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하곤 했습니다. 김수현 전 실장과 이인영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19년 5월 당·정·청 회의에서 '공무원 뒷담화'를 했던 게 대표 사례입니다. 당시 이 전 원내대표는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옆에 앉은 김 전 실장에게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라고 말했고, 김 전 실장은 “그건 해 주셔야 한다. 진짜 저도 (정부 출범)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청와대와 관료 사회 간의 불신이 깊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이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아메리카 호텔 내 프레스룸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마드리드=김범준 기자

서울대 82학번 수석 졸업…원희룡·나경원·조국이 동기

최 수석은 기재부 내에서도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친 '에이스'로 평가받았습니다.

행정고시 29회 출신인 최 수석은 기재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에서 증권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을 지냈습니다. 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으로도 일했습니다. 이후 기재부 정책조정국장, 경제정책국장, 정책협력실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2008년에는 강만수 전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의 정책보좌관을 맡았습니다. 2014년 7월부터 2016년까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근무했고 2017년 기재부 1차관으로 영전했습니다. 2006년에는 기재부 후배들로부터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되는 등 인망도 두터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은 최 수석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입니다. 동기로는 원희룡 국토부장관, 나경원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조국 전 법무부장관 등이 있습니다. 그 중 수석 입학생이 원 장관이고 수석 졸업자가 최 수석입니다. 최 수석은 윤 대통령의 3년 후배이기도 합니다.

'국정농단' 사태 후 복귀…"기업 팔 비틀지 않았다"

최 수석이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로 임명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판결문에는 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근무하던 최 수석이 이용우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사회본부장을 만나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GS 한화 한진 두산 CJ 등 9개 그룹의 출연을 통해 300억원 규모의 문화재단을 설립해야 한다고 요구한 정황이 나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르재단 설립'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지시했고, 안 전 수석이 다시 최 수석에게 실무를 맡긴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검찰은 최 수석이 대기업 기부로 모은 재단 설립금을 재단 측이 임의로 사용할 수 없도록 기본재산 비율을 낮추려 노력한 점을 고려해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최 수석은 경제1분과 간사로 지명된 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업이나 전경련의 팔을 비틀거나 강제하지는 않았다"라며 "국민 눈높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공소장이나 언론 보도 등은 (사실과) 다른 부분이 꽤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원전 세일즈' 숨은 주역…홈쇼핑서 '명절 대책' 팔기도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왼쪽 첫번째)이 지난 30일(현지시간) 스페인 전시컨벤션센터(IFEMA)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대통령(왼쪽 다섯번째) 간 정상회담에 참석하고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빨간 원)이 28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앤서니 노먼 알바니지 호주 총리 간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 수석은 윤 대통령이 이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펼친 '세일즈 외교'의 숨은 주역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최 수석은 윤 대통령이 취임할 때부터 NATO정상회의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NATO 순방을 일주일 앞두고는 경제수석실은 주말도 없이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최 수석은 윤 대통령에게 수출협력 관련 현안을 보고하고, 상대국과 협력 내용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윤 대통령이 양자 정상회담에서 건넨 원전 준비자료 등도 경제수석실에서 준비했습니다.

최 수석은 윤 대통령이 순방 기간 중 호주 네덜란드 폴란드 프랑스 덴마크 체코 영국 캐나다 등 8개국 정상과 양자회담을 할 때 모두 배석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이 2016년 2월 서울 마포구 소재 공영홈쇼핑에서 '설맞이 민생대책 특별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최 수석은 이날 설 물가 안정 및 소비촉진 정책을 설명했다. 연합뉴스
최 수석에게는 또다른 '세일즈'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기재부 1차관 시절 공영홈쇼핑에 출연해 설 맞이 명절대책을 국민들에게 세일즈한 것입니다.

최 수석은 2016년 2월 기재부 1차관 시절 '설맞이 민생대책 특별대담'을 진행해 △중소기업 설 자금 21조2000억원 지원 △승용차 개별소비세 재인하 △창조경제혁신센터 예산 1조5000억원 증액 등의 정책을 홍보했습니다. 우리 농축수산물과 중소벤처기업 제품 애용도 당부했습니다.

홈쇼핑을 통한 '정책 세일즈'는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명절 때만 되면 전통시장을 방문해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던 장·차관들의 행보보다 실질적인 홍보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섭니다.['대통령실 사람들'은 용산 시대를 열어가는 윤석열 대통령비서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대통령실과 관련해 더욱 다양한 기사를 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