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LH 등 14곳 부채만 372兆…개선 없으면 기관장 바꾼다

정부, 공공기관 개혁 신호탄
고강도 구조조정 주문

방만 경영 뿌리 뽑는다
한국전력과 6개 발전 자회사, LH(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14개 공공기관이 비핵심 자산을 팔고 조직과 인력을 정비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과 투자계획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가 30일 이들 기관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정부 주문을 이행하지 않으면 기관장이 해임되고 직원 성과급은 삭감된다. 이번 조치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재무구조 나쁜 공기업 ‘철퇴’

기획재정부는 이번에 재무지표(16점)와 재무성과(4점) 등 총 20점 만점으로 재무상황을 평가했다. 평가 대상은 기존 중장기재무관리계획 작성기관 39개 중 금융·기금형 기관을 뺀 27개 기관이다. 이 중 재무상황이 14점 미만이거나 부채비율이 200% 이상인 기관 14곳을 ‘특별 관리 대상’인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했다.
기재부 조사 결과 27개 기관의 평균 재무상황 점수는 13.5점이었는데, 14개 재무위험기관은 평균이 8.7점에 그쳤다. 특히 재무지표 항목만 놓고 보면 재무위험기관의 평균 점수가 나머지 기관 점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만큼 재무위험기관의 재무구조가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14개 재무위험기관의 지난해 부채 규모는 372조원인데 이는 350개(부설기관 제외) 전체 공공기관 부채(583조원)의 64%에 달한다”며 “재무위험기관들은 대부분 총자산수익률, 부채비율 등이 처참할 정도로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재무위험기관의 재무 현황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 약 5조8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는 1분기에만 7조8000억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부채비율은 지난해 223%에 달했다. 민간기업이라면 회사채 발행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전공대 설립에 1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대기로 했다. 한전공대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공약이다.

한국석유공사는 이명박 정부 때 자원투자 확대 방침에 맞춰 가격 불문하고 해외 석유광구 등을 매입했다가 낭패를 봤다. 급기야 2020년 자본잠식에 빠졌다. 그런데도 지난 정부에서 사업성 논란이 제기된 동해 부유식 해상풍력에 1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코레일은 문재인 정부 5년(2017~2021년)간 1만591명을 신규 채용했다. 직전 5년(2012~2016년) 2006명이던 신규 채용 인원을 다섯 배 이상으로 늘렸다. 지난해 부채비율이 287%에 달할 정도로 재무구조가 나쁜데도 마구잡이식으로 인력을 늘린 것이다.

“공공기관 개혁 신호탄”

정부는 14개 재무위험기관에 7월 말까지 ‘5개년 재정건전화 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비핵심 자산은 팔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구조조정하고, 유사·중복조직과 비대해진 인력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라는 게 정부의 주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재무위험기관 지정은 윤석열 정부 공공기관 개혁의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공기관 개혁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에 대한 물갈이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재무구조 개선이 미흡할 경우 기관장이 해임 건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4개 재무위험기관의 기관장 다수는 전 정부에서 임명된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분류된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을 지낸 정승일 한전 사장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적이 있는 원경환 대한석탄공사 사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경제협력분과위원회에서 활동했던 나희승 코레일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도 친문 인사로 꼽힌다.

정부는 이번 재무위험기관 지정 외에 이르면 7월부터 공공기관 혁신 방안을 차례로 내놓을 계획이다. 급여·성과급 체계를 바꾸고 과도한 복리후생을 축소하거나 기능이 겹치는 기관을 통폐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