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물가특위 '주유소 회의'…호통만 치다 끝났다

현장에서

정유사·규제당국과 현장방문
유류세 인하 반영 지연 질타
정작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나

"與, 휘발유 유통구조 알면서
보여주기式 기업 때리기" 비판

노경목 정치부 기자
류성걸 국민의힘 물가·민생안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유류세 인하 현장 점검을 위해 1일 서울 시흥동 SK에너지 박미주유소를 찾아 휘발유를 넣고 있다. /뉴스1
1일 아침 서울 외곽의 한 주유소에 SK에너지, GS칼텍스 등 정유 4개사 중역들이 모여들었다. 타고 온 승용차를 인근 주차장에 세워두고 걸어서 작은 주유소 사무실로 향했다. 한국석유유통협회를 비롯한 휘발유 유통 관련 민간협회장들도 나란히 자리했다.

사무실에서는 여당인 국민의힘 ‘물가 및 민생안정 특위’의 5차 회의가 열렸다. 유류세 인하가 37%로 확대 적용된 첫날 현장에서 그 효과를 살피겠다며 주유소를 회의 장소로 잡은 것이다.의원들은 회의 시작 전 공개 발언에서 정유업계와 일선 주유소 업주들을 질타했다. 여당과 정부의 노력에도 기름값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민간 탓으로 돌렸다. 특위 위원장을 맡은 류성걸 의원은 “정책 효과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정책 누수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정보를 가진 쪽이 해당 정보를 통해 득을 보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의원들의 옆자리에는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을 필두로 기획재정부 물가대응팀장, 산업부 산업자원국장,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 등이 앉았다. 맞은편의 정유사들과 석유 유통업계를 상시 감독하며 언제든 징벌할 수 있는 이들이다. 최승재 의원은 “국제 유가가 떨어지는 가운데 국내 휘발유값은 그대로인 것과 관련해 (업계의) 담합 오해가 나올 수 있다”며 “정부가 조치를 취하기 전에 (민간이) 타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유사 및 주유업계에 대한 질타로 시작한 회의는 싱겁게 끝났다. 당정은 정유사 직영 주유소 및 알뜰 주유소에 유류세 인하분 즉각 반영, 휘발유 유통 및 가격 모니터링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유류세 인하가 처음 이뤄진 지난해 11월에도 이전 정부가 내놨던 대책이다. ‘정유사 및 주유소 등 유통기관의 마진에 대한 대책이 나왔나’라는 질문에는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는 답이 돌아왔다.인하된 유류세가 일선 주유소 기름값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유통구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주유소에서 인하 전 유류세를 내고 매입한 휘발유가 소진되고 나서야 유류세 인하분만큼 낮춰 판매한다. 유류세를 20% 내린 작년 11월, 30% 인하한 올 5월에도 2~3주 이후부터 일선 주유소 휘발유값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기재부 2차관을 지낸 류 의원이 휘발유 유통구조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업계를 질타한다고 상황이 개선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다른 여당 의원들도 알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정치인들의 보여주기식 기업 질타가 계속돼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