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왜 갑자기 얌전해졌을까 [여기는 논설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과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2022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대통령 집무실 근처인 삼각지역까지 행진한 뒤 정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서울 도심에서 약 5만명(경찰 추산)이 참여한 집회(전국노동자대회)를 가졌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대규모 집회이고, 2015년 11월 8만명(경찰추산)이 참석했던 '민중 총궐기대회'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눈에 띄는 게 준법 집회 양상입니다. 민주노총은 이날 윤 정부에 대해 날을 세웠습니다. 새 정부 노동정책을 '반(反)노동 친(親)기업정책'으로 규정하고 "재벌, 대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규탄한다""몰상식한 윤석열 정부를 더이상 놔두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부터 서울광장에서 본 집회를 가진 후 4시부터 삼각지 로터리까지 행진했습니다. 그리고 6시반에 자진 해산. 교통 체증 때문에 무더위속 시민들의 불편이 있었지만 그 뿐 이었습니다. 예상외 돌발 사태도 없었고, 폭력도 없었습니다. 법원이 허가한 집회 준수 내용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경찰에서 조차 "무탈하게 잘 끝났다" "과격하지 않았다" "법을 잘 준수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7년전 민중총궐기대회때는 폭력 시위로 경찰 113명 부상당하고 경찰 버스 50대 파손됐습니다. 지난해만해도 코로나 위기속 불법 도심집회로 지도부가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CJ대한통운과 하이트진로 현대제철 한국타이어 등 산업현장 곳곳에서 벌어졌던 불법 점거와 폭력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 민주노총이 어떻게 이렇게 얌전해진 걸까요.

전문가들의 해석은 세가지입니다. 우선, 사법당국의 엄단 의지입니다. 당초 경찰은 민주노총 행사를 불허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조건부 허가합니다. 단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는 만큼 참가자들은 행진 구간을 최대한 신속하게 통과해야 하고 행진 종료시간인 6시 30분에는 즉시 해산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습니다. 경찰은 집회 신고범위를 일탈하거나 법원의 허용조건을 벗어난 불법집회나 행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총 120개부대, 1만명 이상의 경찰을 동원했습니다.

지난달 끝난 화물연대 파업때도 비슷한 양상이었다고 합니다. 정부가 8일만에 화물연대측 요구사항을 사실상 전부 수용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서 그렇지, 파업에 대한 경찰 대응은 이번과 비슷했다는 전언입니다. 시위현장서 달걀만 던져도 경찰이 전부 연행하는 바람에, 시위대가 경찰만 나타나면 물러서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두번째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거취 관련입니다. 양경수 민주노총위원장은 지난해 코로나 위기기때 서울 도심에서 조합원 8000여명이 참석한 '7·3 노동자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미신고 불법시위였습니다. 지금 항소심이 진행중이지만, 엄연히 집행유예 상태이니 만큼 또다시 불법시위로 구속될 경우 바로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다는 해석입니다.세번째는 아직 새 정부에 대한 간보기가 진행중이라는 겁니다. 민주노총은 화물연대로 새 정부와의 첫 대결에서 한판승을 거뒀습니다. 파업 8일만에 요구사항을 사실상 전부 관철시키고, 파업으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답을 얻었습니다. 2일 전국노동자대회는 조용히 치렀지만 앞으로 단위조직별, 전국단위로 집행할 하투(夏鬪)일정이 줄줄이 예고돼 있습니다. 국내 최대 단일노조인 현대차 노조가 1일 파업을 결의했고,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제철 등 수많은 작업장에서 파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9~10월에는 민주노총 소속 대형 산별노조들이 파업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11월엔 지난2일 행사보다 더 큰 노동자대회도 열릴 가능성이 큽니다.

2일 도심집회 양상을 민주노총의 변화로 읽기는 시기상조입니다. '노동개혁이 곧 국가의 성장'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정부와 이런 정부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민주노총간에 앞으로 치열한 기싸움이 예상됩니다. 그 싸움의 양상을 국민도, 기업인도, 해외투자자들도 모두 주시하고 있습니다.

박수진 논설위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