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vs 헤지펀드'…2라운드도 구로다가 이길까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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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헤지펀드, BOJ 통화정책 선회에 베팅※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에서는 매주 한 가지 일본증시 이슈나 종목을 엄선해 분석합니다. 이번주에는 일본 엔화와 국채시장, 그리고 헤지펀드의 공격을 다룹니다.
BOJ 대규모 완화 유지하면서 1라운드는 敗
"BOJ 이긴 헤지펀드 없다" 와타나베부인은 이익
세계경제 둔화시 YCC 유지해도 엔화값 유지 가능
엔화 가치가 21세기 들어 가장 낮은 수준까지 추락하면서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일본은행(BOJ)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입물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을 감안하면 일본은행이 현재 수준의 엔저를 더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 즉 양적완화 포기에 베팅한 것이다.그러나 BOJ가 기존 정책을 고수하면서 당장 헤지펀드들은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일본인 투자자들은 수십 년 간 BOJ를 공격했던 수 많은 헤지펀드들이 모두 백기를 들었다는 점을 감안해 BOJ의 편에 섰고, 수익을 봤다. 다만 BOJ에 여력이 많이 남지 않은 것도 사실이기에 이달 말 열릴 BOJ의 통화정책회의에 다시 한 번 눈길이 쏠리고 있다.
○엔화가치 두고…BOJ Vs 헤지펀드
일본 국채·외환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건 지난달 중순경이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14일 134엔대에서 16일엔 132엔대까지 떨어져 엔화가 강세를 보였다. 6월 17일 열리는 BOJ의 통화정책회의를 하루 앞둔 그달 16일 스위스중앙은행이 15년만에 금리인상을 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듯 BOJ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엔화강세)'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최근 BOJ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지속하면서 엔화 가치의 급락을 방조했던 바 있다.글로벌 헤지펀드들은 BOJ가 엔저를 더이상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 봤다. 임금상승률은 정체돼 있는데 유가 등 수입물가가 오르면 일본 경제를 압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따라서 일본국채를 대규모로 매도하는 한편 엔화를 사들였다. BOJ가 금리를 인상하면 국채 가격은 하락하고(금리와 국채가격은 반비례) 엔화 가치가 오르기 때문이다.그러나 BOJ는 헤지펀드들의 예상을 깨고 대규모 통화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헤지펀드의 매도에 대응해 대규모로 국채를 매수함으로서 0.25%(10년물 국채) 수준의 금리 유지에 나섰다. 당장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손실이 결정난 셈이다. 한편 이 상황에서 돈을 번 이들이 있으니, 바로 일본의 개인투자자인 '와타나베 부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4~16일 2거래일동안 와타나베 부인들은 엔 매도 포지션을 구축한 뒤, BOJ의 금리결정 이후 엔화가 하락하자 다시 사들여 수익을 봤다.○헤지펀드의 무덤이 돼 왔던 일본
와타나베 부인들이 BOJ의 편을 든 이유가 있다. 많은 이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세계적인 헤지펀드 매니저 조지 소로스가 영란은행을 공격해 대규모의 부를 얻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그러나 BOJ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수 많은 헤지펀드들이 맞서 싸워왔지만 제대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와타나베부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라크전쟁 당시 엔화 가치를 둘러싼 헤지펀드와 BOJ의 싸움이 있다. 당시 전쟁이 발발하자 글로벌 투자자들은 달러는 싸지고 엔화가 급등할 것이라 봤다. 일본 입장에선 엔화가 비싸지면 수출기업의 실적이 축소되는 문제가 생기므로 필사적으로 엔화 급등을 막아야했다.헤지펀드가 대량의 엔을 매수하는 상황에서 BOJ는 한때 1분당 10억엔어치의 엔을 매도하는 식으로 환율을 방어했다. 이를 위해 BOJ는 갖고있는 30조엔을 우선 활용하는 한편, 보유중인 200조엔의 미국국채 중 만기가 짧은 미국국채를 100조엔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자 했다. 2003년 1월부터 2004년 3월까지 BOJ가 무려 35조엔 가까운 돈을 쏟아부은 결과 전세계 수천개의 헤지펀드가 도산했다. 이후 BOJ는 사들인 달러로 다시 미국국채를 사서 국고에 반환했다. 이른바 '일은포(日銀砲)' 사건이다.○이번에도 BOJ가 이길 수 있을까
글로벌 헤지펀드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시장은 이달 20~21일 예정된 BOJ의 통화정책회의에서 비슷한 공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본다.일본 내에선 BOJ의 손을 들어주는 의견도 나온다. 나가하마 토시히로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엔화 기초 수입물가와 계약통화 기초 수입물가를 비교했을 때 환율이 수입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건 4분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일시적인 현상(에너지 가격 등의 상승) 때문에 통화정책 출구를 검토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한켠에선 차라리 이정도 물가상승이 디플레이션 경제를 탈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디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됐다면 소비를 뒤로 미루겠지만 인플레이션이 오면 그런 현상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워낙 물가 상승률이 낮은 일본이었기에 통화 가치가 떨어지더라도 버틸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일본 물가상승률은 지난 5월 13년만에 처음으로 2%를 돌파했다.다만 BOJ가 통화완화정책을 유지해 헤지펀드를 또 다시 쓰러뜨린다해도 엔저 자체가 더 유지되긴 어렵단 시각도 있다. 국내 한 펀드매니저는 "유로존 경제가 침체되기 시작해 미국 경제도 침체가 현실화되면 선진국의 통화 긴축 정책도 약화될 수 있다"며 "이 경우 BOJ가 일드커브컨트롤(YCC·국채 10년물 금리 상한을 0.25%로 정해놓고 이보다 높아지면 국채를 무제한 매입) 정책을 전환하지 않더라도 엔화 가치가 다시 되돌아 간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