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수포자 아니었다…굉장히 재미있어 열심히 잘 했다"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본 국내파" 강조
"우리 하나하나는 생각의 그릇…함께할 때 멀리 가" 공동연구 보람 설명
수학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39) 프린스턴대 교수 겸 고등과학원(KIAS) 석학교수는 6일 "(수학은) 굉장한 만족감을 줘서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며 수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표현했다.그는 특히 과거 일부 언론매체 보도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라고 묘사된 데 대해 "적절하지 않다"고 단언하며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얘기라고 명확히 밝혔다.

허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수상기념 화상 기자브리핑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 공동연구 보람 설명…"함께 생각하는 게 더 효율적"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허 교수는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보다는 비유를 들어가며 다른 학자들과 함께 수학을 연구하는 즐거움을 설명했다.

허 교수는 학자들 간 공동연구에 대해 "우리 하나하나가 생각의 그릇일 때 그 안에 있는 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 물이 떨어져 전체 물(의 양)이 줄어들 것 같지만 옮길 때마다 물의 양이 늘어나게 된다"며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난해한 구조를 이해할 준비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 하는 것보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멀리 갈 수 있고 깊이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허 교수는 '리드 추측' 증명과 '로타 추측' 증명 등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수학 분야 사이의 일종의 공통점을 찾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수학이 역사적으로 발전해오면서 크게 여러 줄기로 나뉘어서 하나하나가 독립적 발전을 했다"며 "서로 다른 연구 분야를 충분히 깊이 연구하다 보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수학적 대상 사이에 동일한 패턴이 보이는 게 관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종류의 동일성이, (서로) 무관해 보이는 구조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지 이유를 밝혀내는 것에 약간이나마 공헌한 것이 제 연구의 대부분"이라고 했다.
◇"'수포자' 아니었다…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본 국내파"

허 교수는 자신이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본" 국내파라고 소개하면서, "개인적으로 따뜻하고 만족스러운 유년 생활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초·중·고교 과정과 대학 학부(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대학원 석사과정(서울대 수학과)을 모두 한국에서 마친 후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밟았다.

허 교수는 "초·중학교 때 한 반에 40∼50명씩 있는 다양한 친구들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좋기도 싫기도 했지만, 그때만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지금의 저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됐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허 교수는 10대 때부터 수학적 사고를 하는데 익숙한 편이었다며 일부 언론보도에서 그를 '수포자'로 부르는 데 대해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딱 잘라 부인했다.

그는 고교 수학에 대해 "굉장히 재미있어했고, 열심히 했고, 충분히 잘 했다"고 밝히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창 시절 과목 중 하나인 수학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정을 못 붙였지만 게임 퍼즐 등 논리적 사고력을 요하는 종류의 문제에는 자연스럽게 끌렸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대학에 진학(2002년 서울대 자연과학대 입학)한 뒤 20대 초반에 한때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못해 잠시 방황했다가, 수학자로서의 삶을 걷게 된 과정을 소개했다.

허 교수는 "어렸을 때 수학에 흥미가 있었지만 가장 열정이 많았던 분야는 글쓰기였고, 그중에서도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며 "타고난 글쓰기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어 무엇을 하면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적당히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이 재밌어 과학저널리스트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 (학부를) 그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물리·천문학과에 진학했다"며 "대학교 3, 4학년에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학업을 쉬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학 수업을 들으며 수학의 매력을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대에 초빙된) 헤이스케 히로나카 선생님의 대수기하학을 들으면서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상태로 지난 십수년간을 (수학자로) 살아왔다"고 했다.
◇ "나는 복 많은 사람…친구와 선생님 모두가 롤모델"

허 교수는 처음 필즈상 수상 소식을 듣고 가족에게 전하기까지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수상 소식은 올해 초에 처음 들었다"며 "(밤에) 국제수학연맹(IMU) 회장님이 (전화를) 요청해 필즈상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 하고 기대를 안고 받았는데 (수상이) 맞았다"고 했다.

이어 "밤이라 아내를 깨울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깨웠는데, 아내는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고 바로 다시 잤다"며 웃으며 말했다.

허 교수는 그 역시 평범한 일상을 반복하는 생활인임을 강조했다.

그는 "저는 특별한 취미는 없고 종일 수학 연구를 하기에는 지구력이 조금 떨어져 4시간 정도만 집중한다"며 "집안일을 하고 청소하며 그렇게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낮추며 친구, 동료, 선생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는 "살아오면서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려움을 마주쳤을 때 배워야 하는 것이 다르고 필요한 것이 다른데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을 반복해서 만났다"며 "영웅이라 생각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두 저에겐 롤모델"이라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