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억대 연봉'의 역습…"인력 구조조정 시작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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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업계에서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투자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되자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일부 회사들 사이에서 직원 복지 축소와 감원이 언급되기 시작하면서다. "앞으로는 '어떻게 핵심 인재를 지키면서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을 내보낼 수 있을까'가 스타트업들의 최대 관심사가 될 것(황성현 퀀텀인사이트 대표)"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감원 리스크 신호탄?

게임 회사인 베스파의 김진수 대표는 5일 자사 모바일 게임 ‘킹스레이드’ 공식 카페를 통해 "다수의 가족과 안타까운 이별을 했다"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해 회사가 심각한 경영난을 마주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어려울지라도 어떻게 해서든 돌파해 보고자 한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김 대표는 전 직원들을 불러모은 뒤 "(5일 지급 예정인) 6월 급여는 지연 지급이 불가피하게 됐다"며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지난달 29일 진행 중이던 마지막 투자 유치 건이 틀어지면서 고용 유지가 어려워졌다. 권고사직 통보 전날 기준 베스파 재직자는 105명이었다. 이들 중 설립 멤버나 핵심 개발자를 제외한 대다수는 퇴사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베스파는 지난해 임직원 연봉을 1200만원 일괄 인상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김 대표는 “투자 유치로 회생을 노렸지만 안타깝게 됐다”고 했다.

비개발 직군 '불안감'

베스파의 권고사직이 더욱 주목받는 건 스타트업 업계로 '감원 바람'이 옮겨붙을 가능성 때문이다. 한 스타트업은 최근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진행하고 있던 직원 채용을 무기한 미뤘다. 업계 관계자는 "분위기 자체가 당장 급하지 않으면 채용을 굳이 서두르지 말라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당장 채용 플랫폼에 올라오는 자리부터 줄어들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했다. 비개발 직군에서 불안감이 더 큰 모습이다. 한 스타트업 PR담당자는 "회사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당장 PR인력부터 조정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개발 인력은 아직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비개발 부문 직원들은 회사에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투자 유치를 통해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데 최근 벤처투자시장이 경색된 영향이다. 고정비 부담을 줄이려고 개발 등을 외주로 돌리는 일부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복지 경쟁'에 몰입하던 기조도 달라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VC 관계자는 "한 스타트업은 수월한 채용을 위해 임대료가 비싼 강남역 인근으로 사무실을 옮겼는데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벌써부터 나온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시그널 줘야"

개발자 채용과 보상에 집중했던 스타트업들의 기조가 달라질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스타트업 HR 전문가인 황성현 퀀텀인사이트 대표는 "약 2~3개월 전부터 투자 시장이 말라붙으면서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스타트업들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황 대표와의 일문일답. -HR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할까.
"스타트업들은 원래 채용에 대한 관점이 양으로 많이 갔었는데(인재 확보) 이제 바뀌고 있다. 인력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핵심인재를 '킵'하면서 일부 그렇지 않은 인재들을 내보낼까라는 고민들이 생기고 있다."

-개발자 확보 경쟁도 심했는데.
"지금까지 스타트업 HR에서 가장 핫했던 게 채용과 개발자 보상이었다. 개발자의 보상을 위해서 다른 직군과의 형평성을 어떻게 조정할 거냐가 가장 큰 이슈였는데 이제 달라질 것이다. 개발자 연봉의 과열 현상도 조정이 될 것 같다. 투자 경색이 6개월 이상 가면 한계기업들이 나올 거다. 당장 자금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직원들에게 상황이 이러니 벨트를 졸라매야 한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직원 복지도 줄이고, 임금 인상도 예전엔 20% 했다면 일부 내린다든지 조치를 하면서 신호를 줘야한다.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하는 스타트업에선 노무 이슈가 불거질 수도 있다."
참, 한가지 더 "최악의 경기침체"…해외선 이미 감원 한파
픽사베이
해외에서는 본격적인 감원 한파가 불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플랫폼 CEO는 올해 엔지니어 신규 채용을 계획보다 30~40% 줄이겠다고 최근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본 것 중 최악의 경기침체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전체 직원의 10%가량을 감축해야 할 것이란 메시지를 포함시켜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논란이 생기자 머스크는 고연봉 계약자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수습하며 결국 직원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논란이 발생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테슬라 싱가포르법인장이 해고됐다. 넷플릭스도 지난 5월 150명을 해고한 데 이어 지난달 23일 북미 지역에서 근무하는 220여 명의 추가 해고를 결정했다. 넷플릭스 측은 "매출 성장 둔화 속도에 맞춰 비용을 억제하려고 한다"고 했다. 스포티파이도 경기 상황을 감안해 신규 채용을 25%쯤 줄일 계획이다. 온라인 기반 중고차 기업 카바나 역시 최근 전체 고용 인력의 12%인 2500명을 이메일 통보를 통해 해고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