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얼어붙은 가상자산…지금이 규제 만들 적기

거래업자 우후죽순 등장했지만
체계적인 규제 갖추지 못해

자금세탁 등 범죄이용 방지,
가상자산 통한 소득 과세,
서비스 이용 소비자 보호 등
합리적 규제방안 마련해야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전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의 겨울’이 회자되고 있다. 가상자산의 대표격인 비트코인 가격은 작년 11월 6만9000달러를 찍었으나 지난 6월 심리적 하한이라는 2만달러가 붕괴된 후 횡보 중이다. 2만달러라는 가격은 2017년 폭등 이후 3000달러대까지 내려갔다가 2020년 상반기까지 지지부진했던 때와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지만, 고점에서부터의 하락 속도와 그간 확대된 투자자의 저변을 생각하면 충격과 파장이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전체 가상자산 거래 규모가 세계적으로 커서, 투자에 특히 적극적이었던 젊은 세대에 큰 혼란을 주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자산의 투자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주식이나 펀드는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일반적으로 거래소의 심사를 거쳐 상장된 것들에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가상자산이 우리나라에서 법으로 정의된 것이 불과 2020년의 일이어서, 아직 체계적으로 규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가상자산 거래업자들은 거래소를 표방했지만 대중이 거래소에 익숙하게 기대하는 선별과 감시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투자의 모든 결과는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책임지는 것이지만, 2017년 폭등으로 가상자산이 사회적 이슈가 된 이후 5년 가까이 투자 환경 개선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정부가 가상자산에 접근하는 방향은 세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가상자산이 자금세탁 등 범죄에 이용됨을 방지하는 것, 둘째 가상자산으로부터의 소득에 과세하는 것, 셋째 가상자산 및 관련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 중 첫째는 2020년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으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을 갖췄고, 둘째는 세법 개정안이 마련됐으나 시행이 미뤄진 상태다. 가상자산 가격이 폭등한 2017년과 2020년에 정부의 관련 부처가 합동으로 대책을 발표하고, 20대 국회와 현재 21대 국회에서도 법률 제정안과 기존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논의는 느리고 소비자 보호는 공백 상태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의 소비자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나 다행히 최근 선례가 생겼다. 바로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 규제안’이다. MiCA로도 불리는 이 안은 초안이 2020년 9월 제출돼 2022년 3월 14일 유럽의회를 통과했고 연내에 확정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MiCA의 목적은 관련 기술 혁신 지원, 소비자 보호, 금융 안정성으로 제시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성을 위해 가상자산에 규제를 도입하되, 블록체인 기술 등의 혁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상자산 및 관련 서비스 종류에 따라 다른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즉 소비자 보호나 금융 안정성에 위험이 크면 강한 규제를, 위험이 작으면 약한 규제를 가한다.EU의 MiCA에서는 가상자산을 세 종류로 나누고 가상자산 서비스는 여덟 가지로 분류했다. 가상자산 중에는 달러화나 유로화 같은 법적 화폐, 또는 실물이나 다른 가상자산들에 연동돼 안정적인 가치 유지를 추구하는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에 가장 다양한 규제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가상자산은 발행될 때 해당 가상자산에 대해 설명한 ‘백서’가 수반돼야 하는데, 스테이블 코인의 백서에 요구되는 내용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런 분류의 부수적 효과는 유사 스테이블 코인은 스테이블 코인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MiCA의 접근으로 보면 최근 물의를 일으킨 ‘테라’는 스테이블 코인이 아니다. 가상자산 서비스의 경우도 예컨대 투자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는 사업자보다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훨씬 강한 규제를 받는다.

신생 시장에 어쭙잖은 규제를 들였다간 산업을 짓누를 위험이 있다. 이것저것 못하게 하면 사고는 덜 날 테니 결과적으로 소비자 보호가 될 수는 있지만, 소비자가 바라는 바가 그런 것은 아닐 게다. 가상자산 시장이 들끓을 때는 정부도 차분한 대응이 어려웠다. 시장이 긴 겨울을 맞은 것 같은 지금이 호흡을 고르며 규제를 제대로 설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