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가족 비극 막자" 호소에…여야 170명 뭉쳤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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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발달장애 참사는 재난" 결의안 대표발의"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여야 全 의원 연락해 설득…170명 이상 동참
지난 5월 23일, 인천에서 60대 여성 A 씨가 중증 장애를 앓아온 30대 딸에게 수면제를 먹여 살해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A 씨의 딸은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다. A 씨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앓은 딸을 30년 넘게 돌봐왔지만, 그의 딸은 최근 대장암 말기 판정까지 받았다.이날 A 씨는 딸을 따라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6시간 뒤 집을 찾아온 아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A 씨 사건 보도에 한 누리꾼은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나'라는 댓글을 남겼다.
서울시와 서울시복지재단이 지난 4월 발표한 '고위험 장애인 가족 지원방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가족 돌봄자 374명 중 35%는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린 적이 있거나,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36.7%는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애인 가족 돌봄자 정신건강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는 ▲돌봄 스트레스 75.5% ▲경제적 문제 68.6% ▲우울·불안 66.5% 등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가족 돌봄자들은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21.7%는 사회활동에 어려움이 있고, 67.2%는 지인·친인척 등과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는다고 답했다.발달·중증장애인 가족의 비극이 끊이지 않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나서 정치권에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4월 19일 청와대 앞에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며 집단 삭발식을 거행한 시민단체로, 용산 대통령실, 국회 앞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 왔다.
지난 6월 20일 부모연대와 만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선거 유세를 하던 중 삭발과 단식으로 수척해진 발달장애인 가족 여러분께서 많이 찾아왔다"며 "지난 2년간 제가 무엇을 했나 부끄러워서 울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딸이 있는 강 의원은 이날 여야 의원 299명에게 친전을 보내 '발달장애 참사'를 막기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 공동발의를 요청했다.약 2주가 지난 6일, 강 의원은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발달장애 참사 대책 마련을 위한 촉구 결의안', '발달장애인 참사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시민단체의 외침에 국회가 응답한 것이다.
결의안에는 각각 178명, 176명의 여야 의원이 동참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결의안 중 가장 많은 의원이 참여한 것으로, 강 의원이 손 편지를 쓰고, 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설득한 결과라는 평가다.
강 의원은 "결의안에 170명이 넘는 여야 의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해주셨다"며 "많은 의원의 결의안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야 299명 국회의원에게 한 자 한 자 정성을 담아 쓴 손 편지와 점자 등 맞춤형 친전 전달, 전화 설득 등의 노력을 기울인 게 많은 의원님의 참여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국회 내 발달장애인 참사 특위 설치다. 특위는 국가의 발달장애인 지원에 대한 책임 강화를 목표로 정부의 발달장애인 지원 정책을 점검하고, 지역사회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 등 범정부 차원의 개선대책 등을 강구할 예정이다.
또 결의안은 반복되는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사를 국가의 지원 체계 부재로 발생한 '사회적 재난'이라고 규정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의 '제2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 수립·이행, 발달장애인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를 실시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김현승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고위험 장애인 가구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돌봄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다"라며 "고위험 장애인 가구를 표적화한 세심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강 의원은 "발달장애인 가족 참사는 국가와 사회가 떠넘긴 돌봄의 무게에서 발생한 명백한 사회적 재난"이라며 "결의안 발의를 선언적 행위로만 끝내지 않고, 여야의 초당적 협력을 통해 반드시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