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프랑스혁명·1차 세계대전…역사적 사건마다 '합스부르크 가문' 있었다
입력
수정
지면A22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언제나 합스부르크 가문의 딸임을 잊지 마라.” 마리 앙투아네트가 루이 16세와 혼인해 프랑스로 떠날 때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이런 문구가 담겼다.
마틴 래디 지음 / 박수철 옮김
까치글방 / 580쪽│3만원
국내 처음 발간된 합스부르크家 역사서
990년 스위스 북부 백작 칸첼린부터
1918년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까지
세상을 바꾼 인물들의 이야기 담아
현대적 박물관 토대 만들어
카를 6세, 주화·훈장 수만개 수집·진열
제국이 남긴 건축·그림·조각 전해져
가문의 명예를 잊지 말라는 당부에서 ‘해가 지지 않는 제국’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등 유럽 영토의 절반을 600년 넘게 지배한 가문이다.《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는 1000년에 걸친 합스부르크 가문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990년께 사망한 스위스 북부 지방의 백작 칸첼린부터 1918년 물러난 마지막 황제 카를 1세까지 이 가문이 배출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블러디 메리’로 불린 메리 튜더의 남편이자 스페인의 황금시대를 이끈 펠리페 2세와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단두대에 오른 마리 앙투아네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의 주인공 루돌프 황태자 등의 발자취를 전한다.
이 과정에서 세상을 바꾼 굵직한 사건들이 자연스레 녹아든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부인과 함께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박물관의 신축 건물 개장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반(反)오스트리아 운동을 벌이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들은 총과 폭탄을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폭탄은 빗나갔다. 30분 뒤 황태자 부부는 조금 전의 폭탄 테러로 다친 행인을 문병하기 위해 무개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하필 길을 잘못 든 운전사가 암살조 중 한 명인 가브릴로 프린체프가 서 있는 곳 가까이에 차를 세웠고, 프린체프는 총알 두 발을 발사했다. ‘사라예보 사건’으로 불리는 이 총격은 제1차 세계대전의 계기가 됐다. 유럽 전역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현장에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었던 셈이다.
책은 프란츠 황태자가 암살 타깃이 된 이유를 당시 국제 정세와 함께 상세하게 풀어낸다. 황태자는 슬라브계 등 소수민족과 통합하는 포용적인 ‘오스트리아 합중국’을 제창했다. 슬라브계를 규합해 세력을 키우려던 세르비아 입장에선 황태자의 정책으로 슬라브계가 오스트리아에 우호적으로 바뀌는 걸 치명적인 위협으로 판단했다.
책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유럽에 미친 영향도 담았다. 유럽 최초 박물관이 태어난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카를 6세는 주화와 훈장을 수집했는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은 수집품이 수만 개에 달했다. 그는 자신의 주화와 훈장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책 형태로 만든 이동 장식장에 가장 아끼는 것만 추려 보관했다. 그의 사위 프란츠 슈테판은 왕궁에 진열실 책임자를 두고 광물 표본, 해양 생물, 산호와 달팽이 등 자연사 수집품 등을 전시했다. 누가 유럽 최초로 근대적 박물관을 세운 건지에 대해 논쟁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합스부르크 제국이 남긴 건축물과 그림, 조각품 등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저자 마틴 래디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슬라브 동유럽학과 교수다. 중앙 유럽사 전문가로 꼽힌다. 합스부르크 제국, 헝가리와 루마니아 역사에 대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카롤리대와 루마니아의 시비우 루치안 블라가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 발간된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사를 다룬 역사서다. 해외에서 2020년 처음 나왔을 때 주요 외신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합스부르크를 알고 싶을 때 봐야 할 최적의 책”이라고 소개했다. 더타임스는 “매혹적인 합스부르크의 역사를 이보다 박학하고 날카롭게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번역서인 데다 워낙 방대한 역사를 정리하다 보니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