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쏟아지는 자기계발서…'유해한 동화' 될 수도

자기계발 수업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 지음
윤희기 옮김 / 디플롯
488쪽|1만9800원

英켄트대 교수, 자기계발의 뿌리 찾아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가르침
자기계발은 진정한 나 알기부터 시작

자기계발서에 중독되는 현대인들
'간절하면 이뤄진다' 말하는 《시크릿》
"실패 개인탓 돌려…위험천만한 이야기"
Getty Images Bank
‘자기계발’은 불황을 모른다. 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자기계발 시장 규모는 438억달러(약 57조원)다. 연평균 5.5% 성장해 2030년엔 670억달러(약 8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제도 끝이 없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법부터 부자가 되는 법,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물건을 정리하는 법, 시간을 절약하는 법 등 무한하다.

이런 자기계발은 언제부터 시작해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자기계발 수업》은 그 뿌리를 찾아나선다.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영국 켄트대 문화사 교수인 저자는 《시크릿》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12가지 인생의 법칙》 등 동시대 자기계발서에 대한 논평을 가감없이 쏟아낸다. 현대사회에서 자기계발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본다. 자기계발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지만, 돌팔이들은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자기계발은 나쁜 것이 아니다. 책은 “자기계발이란 우리의 지적·정신적 능력과 도덕적 자질을 최대한 발전시킬 방법을 알고 싶어하는 욕망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한다. 자기계발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암울한 세상이다. 자기계발은 결정론적 사고를 걷어차고, 누구나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잠재력이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따지고 보면 고대 철학자들은 모두 자기계발 조언가였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공자, 노자, 예수, 부처 등의 가르침은 모두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과 연결돼 있다. 책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대표 사례로 꼽는다.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든 그 출발점은 진정한 자기 알기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프로이트, 아들러 등의 심리학에 열광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 유행하는 MBTI, 빅파이브 같은 성격유형 검사도 마찬가지다.맹점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자신을 성찰하라는 말이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현대인은 성격유형 검사로 자신과 타인을 다 파악했다는 듯이 여긴다. MBTI로 채용에 불이익을 주거나 상대를 ‘이해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책은 “성격유형 검사는 은밀한 개인의 자아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한다”며 “특정한 틀 안에 가둬 성장을 자극하기보다 방해하고 중단시키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마음을 다스려라’란 말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스토아 철학자들은 모든 고통이 마음에 있다고 생각했다. 고통은 외부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반응, 말하자면 잘못된 판단과 비현실적인 예상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신경을 끄고, 내면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런데 현대의 일부 자기계발서 작가는 한술 더 떠 “마음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각하라 그리고 부자가 되어라》, 《시크릿》 같은 책들이다. 이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들이 논리에 따르면 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나쁜 일은 전적으로 우리 잘못”이라며 “여러모로 위험천만하다”고 평가한다.이런 ‘마술적 사고’를 내세우는 책들은 신속한 해결책을 바라고, 전능하고 무적의 능력을 바라는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을 읽을 때 희망을 품게 하고 기분을 좋게 만든다. 저자는 긍정적 사고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맹목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유연한 낙관주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필링 굿》, 《낙관성 학습》이 그런 부류의 책이다.

저자는 현대의 자기계발 문화가 과거와 다른 점으로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꼽았다. 옛날 사람들은 삶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나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대체로 받아들였다. 선(善)에 강조점을 뒀고, 자기계발은 평생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반면 현대의 자기계발은 개인의 행복과 편안함, 세속적 성공과 부를 목표로 한다. 약간의 노력으로 즉각적인 결과를 바란다. 이는 비현실적인 기대로 이어져 괴로움을 더 크게 만들 위험을 안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의지력, 행위 능력, 변화 능력을 무턱대고 과대평가하는 자기계발서는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왜곡한다는 점에서 ‘유해한 동화’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