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예비 의사들의 무너진 '성윤리' 대책없나

전과 있어도 국시 자격 제한 없어
"단순 교육보단 실질적 제재 필요"

이광식 사회부 기자
“인성부터 삐뚤어진 의사가 진료하면 무슨 사달이 날지 어떻게 압니까. 가뜩이나 병원은 밀폐된 공간인데….”

최근 만난 한 의료업계 관계자는 이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의대생들의 성범죄 사건 보도가 잇달아 나온 것을 두고 한 말이다. 1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최근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카메라 등 이용촬영·반포)로 의대생 A씨(21)를 체포했다.A씨는 전날 도서관 인근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휴대폰으로 옆 칸에 있던 여학생을 몰래 촬영했다. 앞서 또 다른 의대생 B씨는 지난 5월 같은 동아리 학생이 버스에서 잠든 사이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의 휴대폰에는 다른 여성들을 불법 촬영한 100장가량의 사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생들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문제가 된 이들의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범죄같이 불량한 죄를 저지른 자가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현행 의료법상 성범죄나 기타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국가고시 응시 자격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다니던 대학에서 자퇴하거나 퇴학당하더라도 다시 의대에 입학해 의사가 될 수 있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경우 일정 기간 변호사시험 응시를 제한하는 변호사시험법과는 대조적이다.

실제 2011년 의대생 C씨는 재학 당시 술에 취한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불법 촬영해 징역형을 받았으나 3년 뒤인 2014년 수능을 다시 치르고 다른 의대에 진학했다. 국가고시를 치러 의사가 되고 2020년에는 가톨릭대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에 합격했다가 뒤늦게 성범죄 전력이 밝혀져 취소됐다. 재판에 넘겨진 C씨는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 ‘피해 여학생의 사생활이 문란하다’ 등의 설문조사를 해 지탄받았다.대학 교육과정에서 성인지 교육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의료계 현장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A씨 지인이라고 밝힌 한 의대생은 “어차피 (성인지 교육이) 이뤄지더라도 형식적인 선에 그칠 텐데 효과가 있겠느냐”며 “국가고시 자격 제한 등 실질적인 제재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론 한때의 일탈에 멍에를 씌워 의료계 진입을 막는 데 대해 과잉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다른 직업군과의 처벌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인성부터 어긋난 이들이 정식 의사가 돼 일반 의료소비자를 대하는 것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는 우리 공동체의 매우 중요한 존재다. 일선에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