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정규직화가 부른 어느 '과로사'

금감원 본청서 청소근로자 숨져
정규직화 과정서 직원 수 줄어
업무량 늘고 처우도 되레 악화
"무리한 정규직화로 인한 비극"
문재인 정부가 지난 5년간 추진했던 ‘공공기관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화’ 폐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규 채용이 줄고 기존 직원들에게 일감이 몰리면서 급기야 금융감독원 소속 근로자가 과로사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리한 정규직화 추진으로 적자 경영이 심화되고, 공정성을 둘러싼 노노(勞勞) 갈등까지 불거지는 등 사회적 비용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방적 정규직화로 ‘고용경직’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8일 금융감독원 청소 근로자 A씨가 과로사로 숨졌다. A씨는 6일 오전 직원 출근 시간 이전 청소를 하던 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119 구급 대원들이 출동했고, 심폐소생술(CPR) 응급처치까지 현장에서 이뤄졌지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이르렀다. 이후 A씨는 병원 치료 중 사망했다.

동료 청소 근로자들은 A씨가 최근 과로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한 청소 근로자는 “지난해 말부터 사람이 없어서 기존 같으면 2~3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A씨가 몸 상태가 안 좋아지더니 결국 사고가 났다”고 토로했다.

이는 금감원이 용역 고용으로 사용하던 청소 근로자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난해 7월 자회사 ‘FSS 시설관리’를 설립하고 청소 근로자, 경비원 등을 정규직화했다. 금감원은 공공기관이 아니지만, 업무의 공적 성격을 띠고 있어 가이드라인 권고 대상에 포함돼 이를 이행했다.금감원에 따르면 청소 근로자 수는 FSS 시설관리 설립 직전 50명에서 42명(이달 기준)으로 줄었다. 청소 근로자들은 “금감원 직원 수, 건물 규모를 감안하면 최소 70~80명은 돼야 하는데, 자회사가 비용 부담을 핑계로 처우도 악화되고 인원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망한 근로자의 정확한 사인을 조사하기 위해선 시간이 좀 더 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정 경쟁’ 둘러싼 갈등도 확대

고용시장 왜곡은 물론 공공기관 실적 악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경영 상황과 무관한 정규직화로 적자가 심화됐다. 공사는 코로나19 사태로 공항 경영에 부담이 커지면서 영업이익이 2019년 1조2897억원에서 2020년 3607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지난해에는 영업손실이 9299억원까지 늘어났다.

공사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대상 1호 기업이 되면서 자회사 인천공항시설관리를 설립하고 용역 회사 소속이던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고용 인원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며 자회사 인원은 3600여 명(지난해 12월 기준)에 달한다. 2020년 7월에는 자회사 정규직들을 공사가 직고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문재인 정부의 강한 압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적자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비판하는 이유다.사회적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공공기관의 잇따른 정규직화로 ‘공정 경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들의 무분별한 정규직화로 정규직 입사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기회를 잃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체 공공기관 신규 채용 규모는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2만2706명, 2018년 3만3887명, 2019년 4만1327명까지 늘었다가 공공기관 비용 부담 증가로 2020년 3만727명, 지난해 2만7034명으로 2년째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런 흐름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노조도 신설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 ‘공정가치연대’와 서울교통공사 소속 ‘올(ALL)바른노조’는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기존 노조와 다른 노선을 걷겠다며 신설된 제3 노조다. 공정가치연대 관계자는 “기존 노조의 구시대적인 가치관이 아닌, 공정성과 새로운 세대들이 요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