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세 비과세 조항만 74개…"국세청 직원도 이해하기 힘든 法 됐다"

낡은 세제 OUT! (3) '난수표' 된 주택 양도세

양도세 비과세 조항만 74개
"국세청 직원도 이해하기 힘든 法 됐다"

지나치게 복잡한 양도세 규정
투기 막는다며 규정 수없이 바꿔
시행령엔 특례·예외 조항 수두룩

비과세·세액감면까지 얽히고설켜
국세청 직원 稅 과다부과 잇따라
사진=한경DB
서울에 사무소를 둔 A세무사는 지난달 국세청 조사관을 상대로 한바탕 강의를 펼쳤다. 담당 조사관이 일시적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비과세 특례 규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A세무사의 고객에게 예상보다 6억원이나 많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공지했기 때문이다. 조사관은 A세무사로부터 양도세 규정 변경 시점과 주택 매도 시점별 적용 규정이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양도세액을 6억원 낮춰 확정지었다.

A세무사는 “작년부터 한 달에 2~3회꼴로 국세청 직원의 잘못된 양도세 부과 케이스를 발견하고 있다”며 “세무사들끼리도 양도세 계산 결과를 서로 비교해보면 산출 세액이 동일한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양도세 규정은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털어놨다.

예외에 예외 덧댄 ‘누더기’ 양도세제

국세청 담당 직원조차 양도세 계산을 제대로 못 하는 사례가 줄을 잇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의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겠다는 명분 아래 양도세 규정을 끊임없이 고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4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제도를 도입했고, 2018년 9월엔 9·13 대책을 발표하며 일시적 2주택자가 양도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주택 처분 시한을 3년에서 2년으로 조정했다. 이후에도 정부는 수시로 양도세 관련 시행령 및 예규를 수정했다.

예외에 예외를 덧붙이는 식으로 양도세 규정을 고치다 보니 소득세 법령은 전문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난수표’가 됐다. 소득세법 시행령엔 비과세 특례 및 예외 등을 설명하는 조항이 74개(삭제조항 제외)나 된다. 비과세뿐만 아니라 세액을 감면해주는 규정까지 포함하면 규정끼리 서로 얽히고설켜 경우의 수를 세기도 어렵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무사들조차 양도세 관련 수임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세무사가 복잡한 양도세 규정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국세청에 세액을 잘못 신고했다간 세무사가 불성실 신고에 대한 가산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세무사는 “‘양포 세무사(양도세 상담을 포기한 세무사)’란 신조어가 괜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며 “지난 정부의 양도세 개정 역사를 하나라도 놓치면 수억원의 계산 실수가 나오기 십상”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일했던 김종옥 전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과장은 “세제를 만드는 기재부 세제실 직원들을 포함해 현재 주택 양도세 규정 전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단연코 5000만 국민 중에 단 한 명도 없다”며 “세무사도, 세무서 공무원도 양도세 상담을 거부하는 현재의 상황은 정상적인 국가에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결혼 기피 부추기는 양도세제

양도세제가 ‘누더기’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선 문재인 정부 시절 신설된 규정을 전면 재검토하는 동시에 시대에 뒤처진 규정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1주택을 각각 보유한 남녀가 혼인할 경우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기 위해선 결혼 후 최소 5년 안에 주택을 팔아야 한다는 규정이 대표적인 구시대적 세제로 꼽힌다. 혼인 연령이 갈수록 늦어지고 맞벌이가 일반적인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결혼 기피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수원에 남편과 따로 한 채씩 집을 보유한 김모씨(31)는 “2년 전 유주택자인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는데 단기간 내에 집을 팔기 싫어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며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로 아이를 낳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출산 계획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1가구 1주택자가 부모를 모시기 위해 주택 한 채를 더 산 경우엔 2주택자가 된 날로부터 10년 안에 집 한 채를 팔아야 1가구 1주택 비과세 특례를 받을 수 있는 규정도 개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 세무사는 “부모가 10년 넘게 거주하다 사망한 경우 부모를 봉양한 자식이 양도세 중과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세제”라고 지적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