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무조건 선하냐"…연대 청소노동 시위 고소인의 항변 [이광식의 관계자 A씨]

"청소노동 고충 공감하지만 학생 권리 볼모잡는 방식 옳은가"
[편집자주]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가 사회 이슈의 중심에 선 '관계자 A씨'를 찾아가 독자들이 궁금했던 얘기를 물어보고, A씨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 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제보, 제안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난 지난 5월 연세대에선 청소 노동자들이 시급 인상, 휴게실 개선 등을 요구하며 학내 집회 벌였다. 그러자 한 연세대 재학생이 "민주노총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시위 소음 때문에 수업권을 침해받았다"며 경찰에 고소·고발하고 물론 민사로 손해배상까지 청구했다. 온라인은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특권의식에 젖어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는 비판부터 "얼마나 시끄러우면 그랬겠냐"며 공감하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선 너도 나도 소송을 건 학생들을 비판하면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소송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나붙는가 하면 한 교수는 '20대 남성들'의 공정 감각을 비판하며 2학기에 관련 강의를 개설하기도 했다. 연세대 출신 변호사들은 "지금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변론에도 나섰다.소송을 제기한 3명의 연세대 중 한명인 '고소인 A씨'(익명을 요구)와 지난 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주변 카페에서 1시간 가량에 걸쳐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4월 6일 집회를 개최한 민노총 소속 연세대 청소노동자들. 뉴스1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방학이라서 집에서 쉬고 있다. 원래는 계절 수업도 신청했었지만, 이번만큼은 집에서 쉬면서 방학을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논란이 잇따르다 보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노동자들을 경찰에 고발한 계기는 무엇인가.
"일단 청소노동자분들의 집회가 4월 6일부터 시작됐다. 당시 월요일과 수요일에 열리는, 15명 가량의 학생이 들어오는 강의를 수강했다. 수업을 듣던 건물과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집회 소음이 계속됐다. 가뜩이나 발표가 많은 수업이었는데, 다른 학생들 말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수준이었다. 교수님 말씀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집회 중인 청소노동자분들에게 가서 소음 좀 줄여달라고 사정했다. 에브리타임(대학생 익명커뮤니티)에 글도 올렸고, 직접 개설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모인 10여 명의 학생이 각자 집회 측에 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했다. 저만 해도 다섯 번은 넘게 얘기했다."▷집회 측은 뭐라고 대답했나.
"줄이겠다고도 하고, 줄일 수 없다고도 하더라. 정확히는 나에게는 조용히 하겠다고 했는데 다른 학생들에게는 조용히 못 하겠다고 했다. 가끔 소리를 줄였다 키웠다 반복하던데, 조롱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도 한 달 정도를 참았다. 다음엔 중간고사 기간이 돌아왔는데, 도서관은 물론 내가 수업을 듣는 건물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더라.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시위 소음으로 큰 피해를 봤다는 글을 에브리타임에서 확인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5월 9일 서대문경찰서에 이들을 고발했다."

▷시위 소음이 그 정도로 견디기 어려웠나
"4월 6일부터 5월 20일까지는 확성기와 앰프를 동원해 소음 시위를 하다가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6월 17일까지는, 시위는 했지만, 소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6월 20일부터는 웬 꽹과리를 들고 와서 시위를 시작했다. 단순히 확성기로 구호만 외친 것도 아니고, 북한노래 같은 민중가요를 크게 틀었다. 시위 시간이 1시간이라고 하면 그중에 3분의 2 가량은 단결투쟁가를 부르더라. 임을 위한 행진곡 그런 민중가요를 주로 틀고, 나머지는 자기들끼리 연설하다가 출석 체크도 하더라. 노동자 이름 일일이 불러가면서 참석했는지 안 했는지 점검하더라."

▷고발인 조사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5월 20일에 경찰서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관은 이것이 노동쟁의가 아니고 시위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학생의 수업에 대한 업무 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고 이야기하더라."▷소송까지 제기한 것은 너무하다는 지적이 있다.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해도 계속해서 소음이 발생했다. 이래서야 저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해, 총 3명의 학생이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알게 된 이들끼리 힘을 합쳤다. 6월 17일에 민사소송도 냈다. 소음을 발생시키는 영상 등 증거들을 모았다. 변호사는 따로 선임하지 않았고 우리끼리 하고 있다. 집회 자체가 일단 미신고 집회다.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법에도 어긋난다. 소송은 엄연한 시민의 권리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학교에도 대책을 요구하는 등 절차를 거쳤다. 결국 해결이 안됐는데 시위하는 앞에서 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싸움을 걸 수는 없지 않나"

▷청소노동자 개인이 소송으로 인한 부담을 떠안을 우려도 있다.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분들의 고충을 이해해야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고소·고발과 소송은 본질적으로 민노총의 이기적 행동에 대한 소송이다.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홈페이지를 보니 아예 현수막을 만들어서 각 대학에 있는 노조들에 배분했다. 그리고 민노총 측에선 연세대에선 원청인 연세대가 책임져라, 이화여대에는 원청인 이화여대가 책임지라는 식으로 뭐든지 다 학교를 상대로 시위하도록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민노총이 이번 소송에 대해 청소 노동자분들을 대신해 책임을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노총 법률원에는 소속 변호사만 46명이라고 들었다. 이번에는 민변 소속 변호사도 변호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오히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기분이다."

▷최근 잇따르는 보도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일부 언론은 제가 말한 내용 가운데에 거의 한 10%만 떼다 보도하기도 하고, 시위대 가운데 민주노총 소속 외부인도 많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강자인 우리가 약자인 청소노동자분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서술했다. 민노총은 조합원 수만 100만 명이 넘는 거대 조직이다. 단순히 청소 노동자, 혹은 경비 노동자라는 프레임으로만 보도하니까 마치 그분들이 약자인 것처럼, 강자인 우리가 저들을 괴롭히는 강자처럼 그려진다. 자꾸 우리를 두고 ‘특권의식’ ‘특권계층’ 이런 말을 하더라. 먼저 묻고 싶다. 내가 무슨 특권이 있는지 말해달라. 우리는 변호사도 없다. 돈이 어디 있어 변호사를 선임하겠나. 각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섰을 뿐이다. 누가 다윗이고 누가 골리앗인지 다시 생각해봐야할 부분 아닌가."
연세대 학생들이 지난 6일 청소노동자들의 원청인 학교 측에 최근 불거진 청소노동자 처우개선 논란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학내에서 이뤄진 ‘청소노동자 지지 선언’은 어떻게 생각하나.
"별 생각이 없다. 근데 그분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시는지 의문이 들긴 하더라. 그리고 아마 도서관에서 공부하시더라도 시위하는 시간대는 공부를 안 하시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SNS를 통해서 나에 대해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느니, 연대 의식을 상실했다느니, 개인주의라느니, 이런 걸 두고 언더도그마라고 한다. 무조건 약자는 선이고 강자는 악이라는 논리다. 동의하지 않는다."

▷"20대 남성들의 '공정감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한 나임윤경 교수의 수업계획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 분과 직접 소통하거나 한 적은 당연히 없다. 다만 교수께서 강의하시는 장소가 마침 제가 소음 피해를 본 건물이더라. 그래서 그분이 수업하실 때 그렇게 소음을 일으켜도 교수님께서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실 수 있는지 좀 궁금하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 정치적 구호도 외치고 외부인도 개입을 하는데 그분들의 행동을 무조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소송 상대인 김현옥 연세대 분회장 등은 만나봤나.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감정이 좀 풀릴 수도 있을텐데.
"없다. 만나면 악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청소 노동자들은 평소 학교 위생을 위해 힘써왔다.
"그분들이 열심히 일하시고 학교의 위생을 위해 신경을 써주시는 점은 감사하다. 그러나 그냥 청소노동자도 아니고, 민노총 소속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왜 굳이 도서관 앞에서 소음을 내고, 심지어 꽹과리까지 치는 것은 상식에 벗어난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도서관 안에서도 발소리를 조심스럽게 내고 대화도 자제하는 것이 상식인데 말이다. 덧붙이자면, 자신들이 약자니까 무조건 자기 말을 들어야 된다는 것은 일종의 전체주의 아닌가 싶다."

▷학교 측과는 소통하려고 노력했나.
"학교 게시판에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해달라고 건의했으나 학교 측이 '민노총이 집회하는 이유는, 이들이 사측과 임금협상이 되지 않아 학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학습권을 침해하면서까지 집회하고 있다'고 설명할 뿐이었다."
A 씨가 학교 측에 요구한 사항과 이에 대한 연세대 측의 답변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학교가 시위대 측에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이유로 확성기 및 앰프 사용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라
=집회 측에 학습권 보호를 위해 스피커 사용을 자제하라고 매번 요청하고 있으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생들 피해 최소화를 위해 스피커 방향을 학생회관 방향으로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②경찰서에 신고된 집회인지 확인하고, 미신고 집회일 경우 집시법 제6조 제1항 위반을 이유로 고발해달라.
=학교 측에서 고발 조치도 해왔지만, 경찰 측에서 언급한 법률은 공유지일 경우에만 해당할 뿐이라며 학교 캠퍼스와 같은 사유지에서는 형사 고발이 아닌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③ 경찰서에 신고된 집회인 경우, 집시법 제14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14조 제1항에 따라 학교에서 65데시벨 이하로 시위할 것을 요청하라. 이를 어길 경우 경찰과 협조해 집시법 제14조 제2항에 따라 시위대의 확성기를 압류할 것을 요청한다.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소음 측정도 해가면서 집회 측에 소음 자제 요청을 했고, 지금도 꾸준히 자제 요청 중이다. 하지만 집회 측에서는 소극적으로만 응하고 있으며 경찰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

④시위대를 업무방해죄로 경찰 및 검찰에 고발하고, 그 사유로는 소음 유발로 학교 수업을 방해했음을 명시해달라.

⑤ 서대문경찰서에 연세대 시설 보호를 요청해달라.
=모두 전례가 있으나, 경찰의 태도는 소극적이며 이유는 위와 같다.
▷소송을 취하할 생각 없나
"현재로선 취하할 생각이 없다. 재판에서 지더라도 항소할 생각이다. 지금은 경제 사정이 안 좋아서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했지만 좀 더 좋아지면 변호인이라도 선임해서 3심까지 가고 싶다. 물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것 같기는 하다. 민노총이라는 조직이 거대하고, 민변 소속 연세대 동문 변호사들께서도 그분들을 변호해 주신다고 한다."▷이슈와 관련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재학생들이 왜 굳이 사회적으로 비판받을 걸 감수하면서 경찰에 고소도 하고 민사소송도 냈는지 한 번쯤은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입장도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