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장에도…국내 증권사 '팔아라' 0.1%뿐

잠재 고객인 기업 눈치 보느라
32곳, 1년간 매수 보고서 90%

독립리서치 필요성 공감대
지난해 한 외국계 증권사는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 A사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Underperform)’로 하향 조정했다. 목표 주가는 기존 대비 반토막 수준으로 내려 잡았다. ‘매도 보고서’가 나온 날 해당 기업 시가총액은 하루 만에 수조원이 날아갔다. A사는 이 증권사에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A사 투자의견은 ‘중립(Neutral)’으로, 목표 주가는 30% 이상 상향 조정됐다.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유였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기업의 입김이 세게 작용하는 이유는 이들이 ‘잠재 고객’이기 때문이다. 주요 그룹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회사채 발행 등 투자은행(IB) 부문 주관사 경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된 수익 창구가 막히는 것이다.국내 증권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들어 하락장이 본격화했음에도 매도 보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간 국내 32개 증권사의 매수 보고서 비중은 평균 90%에 달했다. 이 기간 한 번이라도 매도 의견을 낸 증권사는 미래에셋, 다올투자, 상상인 세 곳에 불과했다. 32개 국내 증권사는 평균적으로 0.1%의 매도 보고서를 냈다. 외국계 증권사 서울지점은 평균 10%의 매도 보고서를 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투자의견을 꺾었다가 현장 탐방은 물론 회사 내부 정보까지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최고경영자(CEO) 경영 성과를 주가로 판단하겠다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상장사들이 주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매수 일변도인 증권사 기업 분석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2015년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를 시행했다. 하지만 7년이 지나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독립성을 보장받은 리서치센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긴 배경이다.

고재연/서형교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