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빅스텝] 물가·한미 금리 역전에 불가피…경기침체 부작용 우려

물가 6%·기대인플레 4%, 미국 자이언트 스텝에 환율·물가↑…"0.25%p로 부족"
"금리 너무 빨리 올리면 이자부담·소비위축에 경기 타격"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13일 사상 처음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0%포인트(p)나 높였다. 4월, 5월에 이어 이날까지 세 차례 회의에서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미 6%대로 치솟은 데다,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기대 심리는 갈수록 커지고, 이달 중 미국과의 기준금리 역전에 따른 원/달러 환율 추가 상승 압력 등까지 예상되자 금통위로서는 빅 스텝(0.50%p 인상) 이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 거센 인플레 불길…물가 24년만에 최고, 기대인플레 상승폭 최대
금통위가 이날 전례 없는 통화정책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최근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지표도 이례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국제 원자재·곡물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6.0% 뛰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더구나 이런 물가 급등세가 쉽게 잡히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은은 지난 5일 '물가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소비자물가가 앞으로도 고유가 지속,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수요 측 물가상승 압력 확대, 전기료·도시가스 요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의 물가뿐 아니라 경제 주체들의 강한 물가 상승 기대 심리도 문제다.

앞으로 1년의 물가 상승률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은 지난달 3.3%에서 3.9%로 올랐다.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고, 0.6%포인트 상승 폭은 2008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기록이다.

물가에 대한 심리적 눈높이가 높아질수록, 경제주체들은 그에 맞춰 상품·서비스 가격을 올려 상승을 더 부추길 우려가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을수록 임금 인상 압력도 커지고, 임금이 오르면 그 수준에 맞춰 가격도 또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한 단계 높아진 물가가 다시 떨어지지 않고 굳어질 수도 있다.

한은이 가장 걱정하는 시나리오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생산자물가도 지난달까지 다섯달 연속 올랐다.

1년 전인 작년 5월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9.7%에 이른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금통위 회의에 앞서 "6%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더 오를 수 있고, 기대 인플레이션율까지 빠르게 높아지기 때문에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만으로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며 "한은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도 빅 스텝으로 강한 물가 안정 의지를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도 "한은이 이미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Fed)와 마찬가지로 일단 경기 둔화보다는 물가부터 잡는 쪽으로 스탠스(입장·태도)를 정한 것 같다"며 "중앙은행으로서 경기 둔화보다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위험하다고 보고 빅 스텝을 결정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 이달 한미 금리 역전 임박…격차 커지면 자금유출, 환율·물가 상승 우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기준금리 역전이 임박한 점도 빅 스텝 결정의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달 14∼1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1994년 이후 28년만에 처음 자이언트 스텝(한꺼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았고, 한국(1.75%)과 미국(1.50∼1.75%)의 기준금리(정책금리) 격차는 0.00∼0.25%포인트로 좁혀졌다.

금통위가 이날 0.25%포인트만 올렸다면, 오는 26∼27일(현지시간) 연준이 빅 스텝(0.50%포인트 인상)만 밟아도 미국 금리가 우리나라보다 0.00∼0.25%포인트 높아지게 된다.

더구나 연준이 시장의 예상대로 다시 한번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 미국과의 격차는 0.25∼0.50%포인트까지 벌어진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원화 약세 탓에 같은 물건이라도 더 많은 원화를 주고 수입해야 하는 만큼, 수입 물가 상승이 국내 물가 급등세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으로서는 0.25%포인트만 올렸을 때 한미 정책금리 역전 시점이 앞당겨지고, 역전 폭도 커지는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 환율에는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전망이 이미 반영된 것 같은데, 실제 인상 폭이 0.25%포인트에 그치면 환율은 더 올라가고 수입 물가가 높아져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도 "0.25%포인트만 올리면 외환시장에서 내외 금리차를 이용하는 세력이나 기대인플레이션에 충분한 시그널(신호)을 줄 수 없을 것"이라며 빅 스텝에 무게를 뒀다.

이날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면서, 일단 미국과의 격차는 0.50∼0.75%포인트까지 커졌다.

하지만 연준이 이달 자이언트 스텝을 밟는다면, 미국의 기준금리가 0.00∼0.25%포인트 높아지는 역전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실질소득 안 늘고 이자만 급증…소비 회복, 기대 못 미칠 수도"
다만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침체 가능성은 한은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

물가와 환율 관리에 초점을 맞춰 기준금리를 너무 빠르게 올리면,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체감 경기도 나빠져 소비 등 실물 경기가 뚜렷하게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제 금융시장 전문가들의 관심과 우려도 인플레이션에서 리세션(경기침체)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며 "경기 우려 때문에 시장참가자가 예상하는 미국의 정책금리 수준 상단도 4%대에서 최근 3%대로 내려왔다.

연준이 계속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늘어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경기가 둔화하면 우리나라 수출도 줄어들고, 인플레이션 탓에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소비도 생각만큼 살아나지 못할 수 있다"며 "장기 재정계획 등으로 정부에게도 희망을 걸기 어려운 만큼, 한은도 경기 둔화를 고려해 7월 이후 빅 스텝을 또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가계 이자 비용은 급증하는데 이를 메워줄 소득의 증가가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소비 위축, 경기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0.5%포인트 빅 스텝이 올해 가계 소비 지출 증가율을 0.5%포인트가량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실장 역시 "현재 경기 침체 우려가 심각하고, 수출 경기도 좋지 않기 때문에 한은 입장에서 빅 스텝 이후 경기가 침체하면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에 대한 부담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한 차례 빅 스텝을 단행했지만, 이런 이자 증가·소비 위축·경기 타격 가능성 때문에 한은도 추가 빅 스텝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창용 총재도 앞서 지난달 21일 "빅 스텝은 물가 하나만 보고 결정하는 게 아니다. 물가가 올랐을 때 우리 경기나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봐야 한다"며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 변동금리부 채권이 많기 때문에, 가계 이자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통위원들과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고민을 내비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