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총학생회장들…왜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들었나 [긱스]

앳된 얼굴에 어색한 정장 차림, 단정하게 빗은 머리. 밝은 미소로 "학우님"을 외치다가도 학교 깃발을 짊어지고 서서 강한 어조로 시위에 나서기도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멀고도 익숙한 존재인 총학생회장은 과거 '투사(鬪士)' 이미지의 상징체로 시대와 함께 해왔습니다. 주로 군사정권 시절 활약을 펼치던 이들은 어느덧 주요 정당의 중진 자리를 차지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치를 하려면 학생회를 해라"는 말도 있었죠.

시간은 흐릅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총학생회장들은 진로가 다변화한 상태입니다. 특히나 능동적인 움직임이 강조되는 스타트업 생태계는 이들이 역량을 발휘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입니다. 학교를 떠난 지 아직 10년이 되지 않은 이들, 총학생회장 출신 MZ세대 스타트업 대표들은 "학생회와 스타트업 운영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입을 모읍니다. 최근 대학가에서 학생회 출신 창업가들이 많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개팅 주선만 3000명…"공부보다 이성이 남는다"

'Satisfy the desires of love(사랑의 욕망을 충족시킨다)'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의 왼팔에는 문신이 있습니다. 회사 비전을 직접 새긴 것입니다. 오른팔에는 지금까지 론칭한 서비스들 이름을 넣었습니다. 밝은색으로 염색한 머리, 편한 차림은 편견처럼 굳어진 총학생회장 출신 인물들 모습과 다소 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특유의 '에너지'만큼은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나면 공부가 남을까요, 만났던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기억에 남을까요?" 웃음을 머금고 되묻는 안 대표는 데이팅 앱으로 유명한 '글램' 운영사 큐피스트를 이끌고 있습니다. 글램은 그가 대학생 때부터 구상했던 창업 아이템입니다.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
안 대표는 건국대 제45대 총학생회장 출신입니다. 부산외고에서 미대 입시를 치렀을 만큼 '괴짜'로 분류됐던 그는 대학 생활 전반을 '낭만'을 좇는 데 썼습니다. 소속 단과대(예술문화대학)에서 3년간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대표를 하고, 총학생회가 되기 전까진 단과대 학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취업이 어렵고 대학생들이 전부 미래만 바라보고 살다 보니, 낭만에 대한 의지가 있어도 실천이 쉽지 않다"며 "과거를 돌아보면 결국 남는 것은 그 당시 만났던 이성과의 추억이고, 사람은 관계를 통해 배움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2013년부터 임기 1년을 보낸 그의 총학생회 선본 명은 '낭만 건대'였습니다. '캠퍼스커플(CC)'만 4번을 한 안 대표가 직접 지은 이름입니다.임기 마지막까지 소개팅을 해 준 이들은 3000명에 달한다고 했습니다. 학생회 내부에 담당자까지 배치하며 학생들 '소개팅 사업'에 골몰한 결과입니다. 총학생회 임기 중 가장 인상 깊은 이벤트는 '500대 500' 미팅 사업을 꼽았습니다. 축제 기간 100명 이상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를 빌려 회차를 나누고, 커플을 맺어준 것입니다. 기존에 없던 이색 사업에 학생들은 열광했습니다. 안 대표는 "우리 선본은 대학가에서 말하는 '비권(운동권이 아닌 선본)'이었다"며 "통상 총학생회의 성과는 뒤를 잇는 선본의 지지율로 파악할 수 있는데, 낭만 건대 다음을 이은 비권 선본이 90% 지지율을 획득해 자리를 넘겼다"고 했습니다.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가 개최한 캠퍼스 단위 체육대회. 통상 단과대학 단위로 이뤄지는 체육대회를 통합했다. 만화 '피구왕 통키'에 등장하는 '불꽃슛' 기술을 패러디한 장면. 큐피스트 제공
'커플 맺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건국학원 정상화를 위한 범 건국인 비상대책위원회'를 이끄는 등 정무적 활동에도 골몰했습니다. 당시 법인카드 유용 논란에 휘말린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을 상대로 퇴진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보통은 단과대 규모에서 그치는 체육대회를 캠퍼스 단위로 확대하기도 하고, 학교 전체를 관통하는 중고거래 장터를 만드는 등 활동 반경을 넓히기도 했습니다. 건국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KUNG'도 낭만 건대의 작품입니다.

안재원 큐피스트 대표와 총학생회 집행부. 선본명은 낭만건대로, '500대 500' 미팅 사업 등 이색 이벤트를 벌였다. 안 대표는 "다음 선거때 선본 지지율은 90%를 넘겼다"고 했다. 큐피스트 제공.
안 대표는 일련의 활동들을 "가설과 실험 결과를 체득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사업은 기본적으로 가설을 세우고, 내 예상이 맞아떨어지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일"이라며 "총학생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기획력과 '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인적 자산도 사업 기반이 됐습니다. 글램을 처음 론칭시킬 때 안 대표는 학생회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선후배 500명에게 직접 연락을 돌려 가입을 유도했습니다. 그는 "예쁘고 잘생긴 후배들이 있다면 빠짐없이 직접 전화를 돌렸다"며 "마케팅에 의존하는 것보다, 자체적인 영업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고 했습니다. 현재 큐피스트는 매출액 100억원, 누적 투자금액 40억원을 넘기며 시장에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안 대표 주변에는 총학생회 출신 스타트업 인사들이 많습니다. 독서 모임에서 만난 고려대 총학생회 출신의 황순영 팀스파르타 공동창업자, 전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서 연을 맺은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 장지호 닥터나우 이사 등입니다. 그런데도 안 대표는 "아직은 적은 수준"이라 평가합니다. "실제 창업과 괴리가 크지만, 학생회에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 많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사업에 도전하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세상 바꾸는 것은 이제 '정치보다 기업'

"임기 끝날 때 양 당에서 입당 제의가 왔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제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갈 무렵이었어요. 정치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제 기업가가 하는 일 아닐까요?"대학 진학을 앞둔 19세 무렵, 박준홍 핸드허그 대표에게 위인은 세종대왕이나 링컨 전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이병철, 정주영 명예회장이 떠오릅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정신이 멋있어서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 관련 도서를 좋아했습니다. 제 돈 주고 사서 봤어요." 연세대 경영학과 05학번, 46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지금도 정치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기업가들이 경제 기틀을 닦은 역사는 기적 같은 일"이란 것이 박 대표 얘기입니다.
박준홍 핸드허그 대표. 핸드허그 제공.
기업의 기틀이 법과 경영학에 있다고 생각해 재수를 택했습니다. 대학 문을 두드린 것이 21살, 2005년도입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살았습니다. 홀로서기가 1차 목표였습니다. 꾸준히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일주일에 5번을 과외와 서빙 아르바이트로 보냈습니다. 이 와중에 응원단과 비슷한 조직인 '기수단'과 밴드 보컬 활동도 병행했습니다. "암투병하시던 아버지를 고등학교 때 떠나보내고, 형과 어머니에게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것이 그의 회고입니다.

총학생회 활동은 우연히 시작하게 됐습니다. 3학년 때 기수단에서 알고 지낸 선배의 권유로 총학생회의 안살림을 맡는 집행위원장직을 맡았습니다. 그는 총학생회 활동을 기업 운영과 비슷하게 정의했습니다. "강력한 조직력과 실행력"을 강조한 박 대표는 학생회 집행부 인력만 80명을 모았습니다. 학내 셔틀버스 도입, 공원 조성, 중앙도서관 카페 도입 등 사업을 펼칠 때마다 지지율은 올랐습니다. 연세대의 대표 커뮤니티인 '새연넷'도 그가 현재 토스 개발자로 재직 중인 친형과 학생회 시절 만든 것입니다.

이듬해인 2009년 출마한 학생회장 선거에서 그의 득표율은 75% 상당을 기록했습니다. 박 대표는 "역대 경선으로 이뤄진 총학생회 선거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고 했습니다. 임기 1년간 펼친 사업을 마무리하며 "언젠가 내 사업을 하겠다"는 진로를 굳혔습니다. "결국 좋은 사람을 데려와 잔류시키고, 여러 이해당사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기업의 시스템과 같았다"는 것이 그의 깨달음이었습니다. 대외 활동에도 적극이었습니다.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를 열려다 학교 측 반대에 휘말린 '연대 산성' 사태는 그의 이름을 정치권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스포츠 정기 교류전 '연고전'에 입장하고 있는 박준홍 핸드허그 대표. 당시 총학생회장으로서 스포츠 행사를 포함해 다양한 외부 활동을 소화했다. 핸드허그 제공
2009년 박준홍 핸드허그 대표가 기획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는 세간의 집중적 관심을 받았다. 당시 연세대 측이 행사 설비 반입을 막으려 학생회와 갈등을 벌이던 장면. 해당 행사는 대학에 이른바 '차벽'이 설치되며 '연대산성'이란 표현까지 나왔다. 당시 행사는 최종적으로 성공회대에서 열렸다. 연세대 제46대 총학생회 제공.
그는 임기를 마치고 201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습니다. 창업 이전 기업의 시스템을 배우려 했습니다. 동기 200여 명이 모인 신입사원 연수에서 성적 평가 1위를 따내고, 반도체 전략을 세우는 기획팀에 배정됐습니다. 박 대표는 "글로벌 경쟁사 실적이 나오면 새벽같이 실적 발표회를 듣고, 하루 만에 대응 보고서를 올리는 선배들 모습에 감탄했다"고 했습니다.

"내 사업을 위해" 2015년 퇴사하고 설립한 핸드허그는 지난 5월 10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를 받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핸드허그가 운영 중인 서비스 '젤리크루'는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입니다. 캐릭터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굿즈 등으로 수입을 낼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박 대표는 "하이브도 처음엔 연예 기획사로 시작했지만, 상품 판매와 콘텐츠가 붙으며 플랫폼 기업이 됐다"며 "우수 인재들과 함께 올해 매출액 200억원을 목표로 커머스 인프라를 강화해갈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스타트업도 생태계 없으면 쓰러진다"

전창열 밍글링 대표는 두 가지 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듀테크 스타트업의 창업자이면서, 3년 미만 초기 창업자들의 연합 단체 '청년창업네트워크 프리즘'을 이끄는 대표이기도 합니다. 제51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전 대표는 "거창한 사회 정의보다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더 좋은 곳이 되길 바란다"며 "창업도, 연합 단체 활동도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해서 하는 활동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창열 밍글링 대표
전 대표는 총학생회장 출마 이전부터 교내에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이름은 몰라도, 했던 사업들을 학생들이 기억했다"고 했습니다. 행정 서비스 질을 감시하려고 출범한 학교 행정실 모니터링 위원회, 교내 학생처와 연계해 만든 서울대 공식 봉사단 '프로네시스 나눔 실천단' 등은 모두 그가 직접 만든 단체들입니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 학생위원회에서도 장기간 활동했습니다. 2008년도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당시 전 대표가 만든 '실천 가능' 선본에는 100여 명의 학생이 모였습니다. 그는 운동권 4팀, 비권 1팀을 제치고 당선됐습니다.

미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6월, 서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당시 총학생회장이던 전창열 밍글링 대표(사진 오른쪽)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및 장관고시 철회를 요구하는 동맹휴업'이 성사됐음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기 1년간 78개 공약을 모두 처리했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이 학생 복지와 수업권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서울대의 재학생과 교직원, 교수 등을 포함하면 5만 명이고 이는 웬만한 군 단위에 육박한다"며 "공부보다 수많은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는 것이 더 의미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 쇠고기 재협상을 위해 시위에 나선 이유도 "총투표 결과 학생들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학창 시절 활동을 위해 그는 한 학기에 2학점, 3학점만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학교만 10년을 다녔다"며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난 것은 임기 이후입니다. 1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그는 대외 활동에 골몰했습니다. 현재 서울시 비영리단체가 된 서울대 '드림 컨설턴트' 등을 설립하고,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습니다. 전 대표는 특히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경험이 현재 창업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지에서 어학 연수생 최초로 실리콘밸리 한인 단체인 'K그룹'에 가입할 수 있었다"며 "게임빌 창업 멤버인 조성문 차트메트릭 대표, 엔컴퓨팅 창업자인 송영길 대표 등을 만나 꿈을 키웠다"고 했습니다.
전창열 밍글링 대표가 청년창업네트워크 프리즘 대표 직함으로 참여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자상한 기업 협약식'. 청년 창업을 지원하고자 기업들을 매칭시켜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전 대표가 박영선 당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그에게 스타트업은 공동체를 바꿔낼 또 다른 도구였습니다. 귀국 후 컨설팅사 네모파트너즈SCG를 거쳐 2016년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가 이끄는 밍글링은 영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언어 교육과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교육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을 파고든 아이템입니다. 연내 8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 유치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집중하는 활동은 청년창업네트워크 프리즘입니다. 2016년 초기 창업자 신분이었던 그가 직접 5000명의 동료 창업가들을 모아 만든 단체입니다. 창업 3년 미만, 40세 이하 창업가를 지원하는 목적입니다.

현재 인원은 2만 명까지 불어나 국내 최대 청년 창업가 단체가 됐습니다. 사실상 수익이 없음에도, 대학 생활을 통해 경험한 "사람이 주는 기쁨"에 이어가는 활동입니다. 전 대표는 "갖춰진 사람만 정부 지원을 받는 구조를 타파하고 싶었다"며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생태계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참 한 가지 더

'내가 제일 잘나가'…대학가 대표하는 '8090' 학번들
출처=한경비즈니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창업 1세대'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학번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벤처붐' 시대에 재직하던 기업을 박차고 나와 일가를 이룬 인물들입니다.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기와 맞물려, 주로 게임과 인터넷 업계에서 조단위 기업을 일궈냈습니다.

서울대 86학번들이 가장 이목을 끕니다. 고 김정주 넥슨 창업자,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등은 모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동기동창입니다. 이들은 KAIST 대학원에서도 전산학 석사과정을 밟으며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김상범 전 넥슨 최고창조책임자(CCO)도 이 시기 함께 연을 맺게 됩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전자공학과 85학번 출신입니다. 컴퓨터공학과는 아니지만, 같은 세대로 분류됩니다.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는 연세대 전산학과 86학번입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는 어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사이입니다. 지난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전 의장을 총수로 지정한 것에 대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비판 의견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1990년대 초반 학번에도 창업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특히 게임업계에서 강세를 보이는 세대입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94학번 송병준 게임빌 창업자, 고려대 컴퓨터학과 93학번 박지영 컴투스 창업자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92학번 출신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창업자는 게임산업 최초로 '보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은 KAIST 전산학부 91학번입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