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목표에도 온실가스 배출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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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국내 제조업체의 탄소 배출량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요 확대에 따른 생산활동 증가로 자연스럽게 기업들의 탄소 배출량이 늘었다. 2030년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는 국가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4.2%씩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한다[한경ESG] ESG NOW철강, 전자, 정유 등 국내 제조업체의 지난해 온실가스(탄소) 배출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의무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산활동이 늘어 배출량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산업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탄소감축 계획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서 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탄소배출량이 많은 상위 30대 민간기업(발전 공기업 제외)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은 탄소 환산총량(tCO2-eq) 기준 2억6080만 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2억5019만 톤) 대비 4.2% 증가한 것으로, 배출량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고치다. 코로나19가 진정되는 가운데 수요 확대에 따른 생산활동 증가로 자연스럽게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상위 30대 기업이 지난해 국내 전체 탄소배출량(6억7960만 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4%에 달했다. 이들 기업의 배출량이 줄지 않는 한 전체 배출량 감축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포스코의 탄소배출량이 7850만 톤으로 전년에 이어 가장 많았다. 그리고 현대제철(2907만 톤), 삼성전자(1926만 톤), 쌍용씨앤이(1072만 톤), 에쓰오일(993만 톤), LG화학(888만 톤)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서버·가전 분야 ‘반도체 특수’로 인해 탄소배출량이 전년 대비 11.8% 급증했다.
문제는 2030년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는 탄소중립기본법이 지난 3월부터 시행됐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국제사회에 ‘2030 국가탄소 감축 목표(NDC) 상향’을 공식 약속한 데 따른 후속 대책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연 4.2%씩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대란과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영업이익 급감을 무릅쓰고라도 생산라인 가동을 줄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30곳 중 22곳 탄소배출 증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주력 생산하는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온실가스(탄소) 배출량이 전년 대비 22.6% 급증했다. 석유화학 제품 수요 확대로 생산라인 가동을 적극 늘린 데 따른 것이다. 배관 보온재 교체 등 탄소감축을 위해 애썼지만, 생산활동이 늘면서 탄소배출량도 증가했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탄소감축을 위한 탄소포집, 저장·활용(CCUS)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상용화되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인위적으로 생산 가동률을 대폭 낮추지 않는 한 ‘203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탄소배출량이 많은 상위 30대 민간기업 중 지난해 탄소배출량이 전년 대비 늘어난 곳은 22곳에 달했다. 10곳 중 7곳 이상(73.3%)이 증가했다. 화력 발전업체인 GS EPS의 탄소배출량이 전년 대비 22.8% 증가하며 가장 많이 늘었다. 이어 롯데케미칼(22.6%), 여천NCC(18.7%), 삼성전자(11.8%), 한일현대시멘트(14.6%), LG화학(10.1%) 등 순이었다.상위 30대 민간기업의 탄소배출량 증가율(4.2%)은 국내 전체 배출량 증가율을 웃돈다.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지난 6월 2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배출된 탄소배출량은 6억7960만 톤으로, 전년(6억5660만 톤) 대비 3.5% 증가했다. 30대 기업이 전체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34.6%에서 지난해 38.3%로 확대됐다.
지난 3월부터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르면 한국은 탄소배출량이 정점에 달했던 2018년 배출한 7억2760만 톤의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4억3660만 톤으로 40% 줄여야 한다. 2030년까지 8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매년 4.2% 감축해야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감축 여건이 한국보다 좋은 유럽연합(EU)의 연평균 탄소감축률(1.98%)의 2배가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30대 기업의 배출량은 오히려 전년 대비 4.2% 늘어났다. 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 속에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축 기술 조기 상용화 불가능”기업들이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할 방법 중 하나는 탄소저감 기술 개발을 통해 직접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CCUS 기술이 도입되면 탄소배출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비용과 기술 난도 등으로 2030년까지 CCUS 기술이 상용화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이 기업들은 정부가 지정한 할당량을 넘어 탄소를 배출하면 시장에서 초과분의 탄소배출권을 사야 한다. 할당량 대비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한국거래소에서 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다. 배출권을 구매하기 위해 충당금(배출 부채)도 쌓아야 한다. 다만 기업들의 자발적 탄소감축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일 뿐 배출권을 대거 사오더라도 배출량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KAU21(2021년 배출권) 가격은 지난 7월 1일 기준 톤당 2만8000원에 거래됐다. 기업들의 연간 할당량이 매년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 추세의 탄소배출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연간 수조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철강, 석유화학 등 제조업체들은 벌써부터 탄소배출권 제도 강화에 따른 재무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3개 업종에서만 탄소중립 비용으로 2050년까지 최소 4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이 때문에 기업들이 영업이익 감소를 무릅쓰고 생산량을 대폭 줄이지 않는 한 탄소중립은 요원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은 지금도 세계 최고 생산 효율성을 보유하고 있다”며 “탄소중립을 위해 공정을 향상하기 위한 한계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경민 한국경제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