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 조선인 학살 위령무대 '넋전 아리랑' 여는 무용가 김은진

내달 한국문화의집서 공연…"피해자 영면 위해 추모 계속할 것"
"간토(關動)대지진 당시 '우물에 독을 탔다', '방화한다' 등 선인습래(鮮人襲來·조선인이 습격한다)의 유언비어로 억울하게 희생돼 구천을 떠돌 수많은 조선인의 혼령을 위로하는 무대를 열려고 합니다. "
8월 24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소재 '한국문화의집 KOUS'에서 일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99주기 위령 무대인 '넋전 아리랑·홀로아리랑'을 여는 무용가 김은진(49) 씨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희생자와 유족뿐 아니라 아픈 역사를 부채로 떠안은 우리 모두를 위로하는 공연"이라고 소개했다.

간토학살은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규모 7.9의 간토대지진이 일본 수도권 일대를 강타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재일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이 학살된 사건이다.

당시 독립신문은 6천여 명이 희생됐다고 보도했다. '넋전'은 죽은 자의 넋을 받는 종이인형으로 무당이 굿을 할 때 사용하며, 진혼·추모제 등에서 활용하는 소품이다.

치유 무용을 전공한 그는 명지대, 연세대 등 주요 대학에서 무용 실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간토학살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15년 1인극의 거장이자 민속학자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들기도 했던 심우성 선생을 만나면서부터다. 심 선생의 '통일 결혼 굿'에서 희생자의 혼령을 위로하는 춤사위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그때부터 은사로 모시고 춤을 더 배웠다.

간토 조선인학살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데 앞장서 왔던 심 선생은 1985년 일본 지바(千葉)현 소재 사찰인 관음사에 역사를 바로 알리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보화종루(普化鐘樓)'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김 씨는 "보화종루 앞에서 넋전춤을 추는 무대를 열자고 했는데, 2018년 선생이 타계하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늘 맘에 걸렸다"며 "늦게나마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간토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진실'을 밝히는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말을 누누이 들어왔다"며 "특히 예술가로서 진실을 알리고 치유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배웠기에 이번 공연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귀천하는 마음'이라는 진혼제를 열면서 무대에서 간토학살을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2016년 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간토학살 위령제인 '홀로아리랑'을 공연했다.

2019년 심 선생 추모 1주기 공연에서도 간토학살 위령제를 열었던 그는 이번에 내용을 더 다듬고 미래지향적인 내용도 담아서 무대를 연다.

김 씨는 "간토학살 희생자 유족들로부터 '해마다 9월 1일이 다가오면 가슴이 먹먹했는데 추모 무대가 열린다니 꼭 참석하겠다', '억울한 죽음을 어디 하소연도 못 했는데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해줘서 고맙다' 등 감사와 격려의 말을 들어서 더 힘이 난다"고 했다.

그는 "99년이 흘렀지만, 피해자와 유족에겐 아직도 고통이 멈추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이라며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복수'와 같은 갚음이 아니라, 누명을 벗는 명예 회복이고 이를 통한 용서와 화해"라고 전했다.

이번 공연에는 간토대지진과 학살 등을 알리는 영상을 무대에 띄우고, 수백 개 넋전 인형과 함께 무대에서 진혼의 춤사위를 펼친다.

불교에서 혼령을 위로하는 영산재 공연을 하는 승려들도 출연하며, 양국이 화합해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자는 춤사위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그는 "학살 100주기인 내년에는 희생자들의 넋이 서린 일본에서 공연을 펼칠 계획"이라며 "진상이 규명되고 유족의 아픔도 달랠 수 있도록 특별법 제정에 힘을 보태고 싶다. 그때까지 위령 무대를 계속 열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