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도연명이 금주(禁酒)를 선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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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끊으며(止酒)
성읍에 사는 것 그만두고
자유롭게 노닐며 스스로 한가하네.
앉는 건 높은 나무 그늘 아래에 멈추고
걷는 건 사립문 안에 멈추네.
좋은 맛은 텃밭의 아욱에서 그치고
큰 즐거움은 어린 자식에서 그치네.
평생 술을 끊지 못했으니
술 끊으면 마음에 기쁨이 없기 때문이었네.
저녁에 끊으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 끊으면 일어날 수가 없네.
날마다 날마다 끊으려고 했지만
혈기의 작용이 멈추어 순조롭지 않네.
단지 술을 끊는 게 즐겁지 않은 것만 알고
끊는 게 몸에 이로운 것은 믿지 않네.
비로소 끊는 게 좋다는 걸 깨닫고
오늘 아침에 정말로 끊게 되었네.
이로부터 한결같이 끊어 나가면
장차 부상의 물가에 이르리라.
맑은 얼굴이 예전 모습대로 머물 것이니
어찌 천만년에 그치겠는가.
居止次城邑 逍遙自閑止 坐止高蔭下 步止蓽門裏
好味止園葵 大歡止稚子 平生不止酒 止酒情無喜
暮止不安寢 晨止不能起 日月欲止之 營衛止不理
徒知止不樂 未信止利己 始覺止爲善 今朝眞止矣
從此一止去 將止扶桑涘 淸顔止宿容 奚止千萬祀.
* 도연명(陶淵明·365~427) : 중국 동진 말기에서 송대 초기의 시인.
---------------------------------------------------이태백과 함께 유난히 술을 좋아했던 도연명(陶淵明). 그가 술을 끊게 됐다니 이 무슨 얘기일까요. 이 시를 쓴 시기를 짚어보니 그의 나이 마흔아홉 살 무렵입니다. 이보다 13년 뒤인 예순두 살에 세상을 떠난 걸 감안하면, 말년까지 아예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 말인데….
학자들에 따르면 이 시에서 ‘지(止)’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였습니다. 우선 ‘머물다, 멈추다, 그치다, 끊다’ 등의 의미가 있죠. 이건 우리가 잘 아는 한자 ‘그칠지(止)’의 기본 뜻입니다.
그러나 ‘지(止)’에는 ‘최선의 경지’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말한 ‘최선의 경지에 멈추다(止於至善)’와 연관을 지어 보면 이 시의 묘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군요.그러고 보니 술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끊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됐지만 끝내 술을 끊을 수 없다는 얘기를 ‘지(止)’의 해학으로 표현한 게 이 시입니다. 처음 여섯 행에서 ‘지(止)’는 시인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경지라는 것을 암시하는군요.
그의 술사랑은 특별했습니다. 다섯 번이나 벼슬을 집어 던진 그가 마지막 관직인 팽택령에 나가게 된 것도 술 때문이었죠.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아직도 세상이 평온하지 못하였으므로 멀리 가 벼슬하기는 꺼렸지만 팽택은 집에서 백 리쯤 되고, 공전(公田)의 수확으로 족히 술을 빚어 마실 수 있었으므로 응했다’고 썼습니다.그가 남긴 시 145수 중에서 술에 관한 것이 56수나 됩니다. 작정하고 쓴 시 ‘음주(飮酒)’ 연작은 20수에 이르지요.
술 관련 일화도 많습니다. 그가 살던 곳에 널찍한 바위가 있었죠. 술에 취한 그가 이 바위에 자주 드러눕는 바람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취석(醉石)’이라고 불렀습니다. 친구가 부임하는 길에 돈 2만전을 주고 갔는데, 이 돈을 모두 술집에 보내놓고 조금씩 마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그러니 끝내 술을 끊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죠. 도연명처럼 술을 많이 마시면서 62세까지 사는 것뿐만 아니라, 술을 잘 제어하면서 건강수명을 오래 유지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삶기이기도 합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성읍에 사는 것 그만두고
자유롭게 노닐며 스스로 한가하네.
앉는 건 높은 나무 그늘 아래에 멈추고
걷는 건 사립문 안에 멈추네.
좋은 맛은 텃밭의 아욱에서 그치고
큰 즐거움은 어린 자식에서 그치네.
평생 술을 끊지 못했으니
술 끊으면 마음에 기쁨이 없기 때문이었네.
저녁에 끊으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 끊으면 일어날 수가 없네.
날마다 날마다 끊으려고 했지만
혈기의 작용이 멈추어 순조롭지 않네.
단지 술을 끊는 게 즐겁지 않은 것만 알고
끊는 게 몸에 이로운 것은 믿지 않네.
비로소 끊는 게 좋다는 걸 깨닫고
오늘 아침에 정말로 끊게 되었네.
이로부터 한결같이 끊어 나가면
장차 부상의 물가에 이르리라.
맑은 얼굴이 예전 모습대로 머물 것이니
어찌 천만년에 그치겠는가.
居止次城邑 逍遙自閑止 坐止高蔭下 步止蓽門裏
好味止園葵 大歡止稚子 平生不止酒 止酒情無喜
暮止不安寢 晨止不能起 日月欲止之 營衛止不理
徒知止不樂 未信止利己 始覺止爲善 今朝眞止矣
從此一止去 將止扶桑涘 淸顔止宿容 奚止千萬祀.
* 도연명(陶淵明·365~427) : 중국 동진 말기에서 송대 초기의 시인.
---------------------------------------------------이태백과 함께 유난히 술을 좋아했던 도연명(陶淵明). 그가 술을 끊게 됐다니 이 무슨 얘기일까요. 이 시를 쓴 시기를 짚어보니 그의 나이 마흔아홉 살 무렵입니다. 이보다 13년 뒤인 예순두 살에 세상을 떠난 걸 감안하면, 말년까지 아예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는 말인데….
한자 ‘지(止)’라는 글자에 담긴 비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후로도 술을 계속 즐겼습니다. 이 시에는 한자 ‘지(止)’자가 20개나 들어 있는데요, 그 글자 속에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대체 어떤 비밀일까요.학자들에 따르면 이 시에서 ‘지(止)’는 여러 가지 뜻으로 쓰였습니다. 우선 ‘머물다, 멈추다, 그치다, 끊다’ 등의 의미가 있죠. 이건 우리가 잘 아는 한자 ‘그칠지(止)’의 기본 뜻입니다.
그러나 ‘지(止)’에는 ‘최선의 경지’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말한 ‘최선의 경지에 멈추다(止於至善)’와 연관을 지어 보면 이 시의 묘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군요.그러고 보니 술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끊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됐지만 끝내 술을 끊을 수 없다는 얘기를 ‘지(止)’의 해학으로 표현한 게 이 시입니다. 처음 여섯 행에서 ‘지(止)’는 시인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경지라는 것을 암시하는군요.
술 취해 자주 눕던 바위는 ‘취석(醉石)’
그의 다른 시 ‘음주(飮酒)’ 제5수도 그렇습니다. 이 시에서 ‘사람 사는 고장에 막집을 엮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다/ 묻노니 그대는 어떻게 그러할 수 있는가/ 마음이 초원하니 땅은 절로 편벽해진다네(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라고 읊은 것 역시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최선의 경지라는 거죠.그의 술사랑은 특별했습니다. 다섯 번이나 벼슬을 집어 던진 그가 마지막 관직인 팽택령에 나가게 된 것도 술 때문이었죠.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아직도 세상이 평온하지 못하였으므로 멀리 가 벼슬하기는 꺼렸지만 팽택은 집에서 백 리쯤 되고, 공전(公田)의 수확으로 족히 술을 빚어 마실 수 있었으므로 응했다’고 썼습니다.그가 남긴 시 145수 중에서 술에 관한 것이 56수나 됩니다. 작정하고 쓴 시 ‘음주(飮酒)’ 연작은 20수에 이르지요.
술 관련 일화도 많습니다. 그가 살던 곳에 널찍한 바위가 있었죠. 술에 취한 그가 이 바위에 자주 드러눕는 바람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취석(醉石)’이라고 불렀습니다. 친구가 부임하는 길에 돈 2만전을 주고 갔는데, 이 돈을 모두 술집에 보내놓고 조금씩 마셨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옵니다. 그러니 끝내 술을 끊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죠. 도연명처럼 술을 많이 마시면서 62세까지 사는 것뿐만 아니라, 술을 잘 제어하면서 건강수명을 오래 유지하는 게 더 의미 있는 삶기이기도 합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