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박탈 정당한가" vs "공익 위해 필요"…헌재서 공방

사형제 헌법소원 공개 변론…생명권 제한 가능성·범죄 억지력 등 쟁점
"사형제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점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지만 사형제로 인한 생명권 박탈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는 정부도, 학계도 객관적·실증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헌법소원 청구인 측 대리인)
"국민의 생명 보호 등 매우 중대한 공익을 지키기 위해 엄중한 형벌을 가하고, 응보(응징과 보복)적 정의와 범죄의 일반예방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생명권 제한도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법무부 대리인)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 중 하나이자 한국 사회의 해묵은 논쟁거리인 사형제 문제가 14일 헌법재판소 공개 법정에 올라왔다.

사형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헌법소원 청구인 측과 존치 입장에 선 법무부는 헌법 원리와 사형제의 역할 등을 놓고 서로 팽팽하게 맞섰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2018년 부모를 살해한 A씨다.

1심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A씨와 함께 2019년 2월 사형제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A씨는 이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청구인 측은 "생명은 절대적 가치이므로 법적 평가를 통해 박탈할 수 없다"며 "사형제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 등으로도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사회 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사형제가 다른 형벌에 비해 효과적으로 범죄를 억제한다는 뚜렷한 근거가 없고, 사형 집행 후 오판으로 드러나도 이미 사라진 생명을 되돌릴 수 없어 적절한 형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으로 출석한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형제도는 사형수를 오로지 국가의 형사정책적 수단으로 전락시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사형은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함으로써 범죄자에 대한 개선 가능성을 포기한 형벌로, 교화를 추구하지 않는 형벌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법무부는 "범죄 예방에 따른 공익의 실현 대상은 무고한 일반 국민의 생명"이라며 "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흉악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사형 선고·집행이 이뤄지는 것이라면 사형제가 달성하는 공익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맞섰다.

또 인간의 생존 본능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고려하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사형만큼의 범죄 억제 효과를 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사형제를 폐지한 대다수 국가가 재판기관의 결정이 아닌 헌법·법률 개정 방식을 택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사형제를 없앨지는 헌재가 아닌 국민과 국회가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 측 대리인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대 형사법 체계에서 형사 처벌의 목적이 '보복'이 아닌 '교화'에 있는 것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지만 응보의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한국 국민의 법 감정은 여전히 응보적 정의를 요청하고 있는 점을 무시할 수도 없다"고 했다.

사형제는 1953년 한국 제정 형법에 포함됐다.

내란죄나 간첩죄, 범죄단체조직죄, 살인죄 등을 저지른 자에게 적용 가능한 처벌 방식이다.

다만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실제 사형이 집행되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엠네스티는 2007년 한국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했고, 정부는 2020년 75차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사형 집행 모라토리엄(일시적 유예)' 결의안에 찬성하기도 했다.

현재 국내 미집행 사형수는 모두 59명이다.

앞서 헌재는 1996년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2010년에는 재판관 5대4 의견으로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헌재는 "사형제는 형사제도에 관한 매우 중요한 논제이며 학계는 물론 국민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면서 "이번 변론을 사형제에 관한 헌법적 논의의 장으로 삼아 심판 대상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라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