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칼럼] 패러디 新국민교육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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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헌절에 다시 쓰는무엇보다 ‘민족’은 빼고 시작해보자. 그 자리는 ‘자유 시민’으로 대신한다. 개방·교역으로 성장해온 나라이니 ‘자유 세계시민’이 더 좋겠다. 민족에 대해서는 논란도, 논변도 과도했다. 찬반, 지지·부정의 스펙트럼도 무척 넓다. 커가는 학생들부터 읽어야 하는데, ‘역사적 사명’도 무겁고 압박감까지 준다. 그래서 1968년에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을 이렇게 ‘리모델링’해본다.
'자유주의 교육헌장'
"우리 개인 각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유 세계시민으로 태어났다"
민족 빼고 자유 35번 외친 새 정부
교육개혁으로 독립·자율 시민 육성
시대 소임 해낼까
허원순 논설위원
“우리 개인 각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유 세계시민으로 태어났다. 자유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깨달으며, 나의 자유와 함께 모든 이의 자유를 존중한다. 민족이라는 전시대의 낡은 개념을 발전적으로 극복하고, 서로 존중하며 호혜 평등한 인권 기반의 자유 세계시민으로 나아간다. 우리 조상의 훌륭한 점과 그렇지 못한 것을 냉철하게 잘 살펴 이 시대에도 맞는 좋은 정신과 문화를 이어받는 동시에 나라 밖 동서양의 훌륭한 가치와 철학을 잘 받아들이는 게 교육의 요체다.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해 실천하고, 밖으로 자유와 자립의 진정한 인류 진보와 공동번영을 주도할 때다. 자유주의의 선도를 위해 개인 각자가 더 노력하며 이를 교육의 지향점으로 삼는다.
어떤 상황에도 자주·자립정신과 성실·근면의 마음을 스스로 다지는 게 소중하며, 그 바탕에서 강인한 정신과 튼튼한 몸을 갖는 게 교육의 출발점이다. 강건하고 독립적인 개인의 합이 곧 사회요 국가임을 자각하면서, 저마다의 소질을 어떠한 강요도 없이 계발하고, 개인과 한국 사회의 처지를 더 나은 자유 세계시민을 향한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타의 간섭을 배제하는 불굴 개척정신을 기른다. 개인의 보편·합법적 이익을 존중하고, 그런 기반의 사적이익 추구를 인정하면서, 그 바탕에서 공익을 추구한다. 국가 사회적 질서 또한 개인의 천부 자유권 위에서 추구하면서 능률과 실질을 존중한다.
상호 간 경애를 고취하되 사농공상·관존민비 같은 낡은 잔재를 떨쳐내고, 신의를 추구하되 가치의 강요를 배격한다. 상부상조의 전통을 살려나가되 막연한 공동체주의와 전체주의 경향을 경계한다. 명랑 온화한 공존의 가치, 협동의 미덕도 그렇게 키워나간다. 우리의 창의와 상호 존중, 자발적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성숙하고, 자유 시민 개인의 성숙이 나라 발전의 근본임을 깨닫는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이라는 식의 전체주의 세계관을 경계하며, 언제나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보편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누구의 간섭도 없이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스스로 동참하고, 각자의 처지에 맞게 기꺼이 봉사하는 시민정신을 드높인다.반지성주의와 포퓰리즘을 뛰어넘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투철한 보편적 세계 시민정신이 미래로 가는 길이며, 자유민주 진영의 인류 진보에 기여하는 길이다. 실질 없이 통일을 외치기보다, 내용도 없이 후손 번영을 외치기보다, 세계로 눈을 돌려 인류 진보의 미래를 내다보자. 자유 기반의 신념과 긍지를 잊지 않는 독립적이고 부지런한 세계 시민으로 인류 보편의 지혜와 슬기, 합리정신을 모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자. 2022년 74주년 제헌절에.”
자유를 거듭 강조하다 보니 패러디가 원작보다 길어졌다.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침해·훼손이 그만큼 심했던 탓이다. 제헌절을 맞아 절감할 뿐이다.
민주화되고 산업화된 ‘시민’ 시대에 ‘국민’교육헌장은 제목부터 맞지 않는 유물이다. 그래도 머릿속이 여전히 ‘백성’인 전근대인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니 계도적 교육헌장의 필요성이 영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보면 패러디여도 교육헌장 대신 ‘자유 세계시민헌장’이 타당하겠다. 이 또한 그 시절 ‘국민학생’에게 무조건 외우게 했던 방식은 금물이다. 학생과 교사 각자가 자유롭게 읽어보고 자기 삶에 스스로 참고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현 정부는 민족은 배제한 채 자유를 35번이나 외치며 출범했다. 대통령이 제시한 3대 개혁과제 중 하나인 교육의 올바른 방향도 자명해졌다. 안 그래도 교육 현장에는 숙제가 많다. 부조리한 교육교부금, 수월성 교육이 전면 부인된 와중에 급락한 기초학력, 부실한 공교육, 좌편향 교과서 등 바로 잡아야 할 현안이 쌓여 있다. 강압적 등록금 동결로 비롯된 싸구려 대학의 문제를 빼고도 그렇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스스로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미래지향의 자유 세계시민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