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K컬처를 다진 조용한 실력자 X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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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김민희《다정한 개인주의자》MZ세대가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X세대를 분석한 《다정한 개인주의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70년부터 1979년 사이에 태어난 중년들의 얘기에 왜 귀 기울이는 걸까.
우선 X세대가 요즘 가장 핫한 Z세대의 부모 세대라는 걸 환기하자. ‘생글생글’ 독자들의 부모 얘기를 담은 《다정한 개인주의자》를 통해 X세대가 어떤 특성을 지녔고 어떤 고민과 소망을 안고 있는지 파악한다면 가족 간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다.세대는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 30년 정도 되는 기간’을 뜻한다. 세상의 변화가 극심하다 보니 10년 단위, 때로는 5년 단위로 세대를 나누는 시대가 됐다. 김민희 저자는 이 책에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86세대(1960~1969년생), X세대(1970~1979년생), 밀레니얼 세대(1980~1989년생), Z세대(1990년 이후 출생)로 세대를 구분했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친 이름이다.
X세대는 국외적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국내적으로 반독재 정치가 막을 내린 1990년대에 20대를 맞아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마음껏 펼치며 젊음을 보냈다. 정치·경제 만능주의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풍토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문화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X세대는 문화 세대, 정보화 세대, 탈정치 세대로 불리며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고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패션,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이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달라 ‘신인류’라는 별칭까지 얻었다.이전 세대가 ‘우리’와 ‘시대정신’을 부르짖었다면 X세대는 본격적으로 ‘나의 욕망’을 노래했다. 최근 들어 MZ세대의 화두가 된 ‘나다움’을 X세대는 이미 1990년대에 부르짖었다.
X세대가 대중문화 움직인다
1990년대는 우리 국민의 75%가 중산층이라고 자부한 풍요로운 시대였으나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인해 국가 전체가 휘청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 많은 기업이 도산하면서 X세대는 취업이 힘든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기회가 부족한 상황에서 X세대의 상당수는 비교적 경쟁이 덜한 문화예술 분야로 눈을 돌렸다. X세대는 ‘조직력을 모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는 약했지만 각자의 창의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데는 능한 이들’이 되었다.김민희 저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는 거의 X세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단언했는데, 다른 세대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대중음악의 판도를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 BTS를 키운 방시혁 하이브 의장, 아이돌 문화를 설계한 박진영 JYP 대표, ‘강남 스타일’의 싸이, 세계를 뒤흔든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지옥’의 연상호 감독, ‘킹덤’의 김성훈 감독과 김은희 작가도 X세대다. 2010년 이후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영화 15편 가운데 13편을 X세대 감독들이 만들었다.
낀세대의 기를 살려라
현재 대한민국의 주요 요직을 86세대(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60년대생)가 차지하고 있다. 86세대가 장기집권하는 사이 MZ세대가 밀고 올라오면서 X세대는 앞과 뒤가 모두 막힌 ‘낀세대’가 되었다. 윗세대의 모욕적 언사를 온몸으로 받아낸 X세대는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히 하는 사이다 세대를 맞아 ‘참아내기 달인’을 자처했다.치열한 자리싸움에 관심이 적지만 잡초처럼 생존에 강한 X세대를 김민희 저자는 ‘조용한 실력자’로 명명했다. 세대 갈등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감수성’ ‘아날로그와 디지털 감성’을 두루 섭렵한 X세대는 중재자 역할도 가능하다.
팬덤문화 1세대인 X세대는 Z세대와 함께 덕질도 하고 콘서트 티케팅을 돕기도 한다. 취향 세대 첫 주자이자 첫 글로벌 세대인 X세대 부모와 ‘안 통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재의 문화강국을 만든 부모는 자녀를 이해할 준비가 다 돼 있다. Z세대 자녀들이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직장에서 피멍드는 X세대 부모의 기를 팍팍 세운다면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다.
X세대가 우리 사회의 허리를 담당하며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 안심이 된다. 열정과 실력으로 다진 문화력을 전 세계에 퍼트린 X세대는 여전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1990년대를 떠들썩하게 장식했다가 어느새 사라진 줄 알았던 X세대가 K컬처를 만개시켰다는 점에 감사를 표한다. 용기는 있지만 용기를 낼 시대적 상황을 맞지 못했던 X세대가 용기있게 쭉쭉 뻗어가길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