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덕적 해이 부추기는 민생안정 대책

빚 성실하게 갚은 사람만 바보?
청년 지지율 하락에 포퓰리즘 비판

김대훈 금융부 기자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만 바보 되는 세상이네요.”

정부가 14일 내놓은 ‘125조원+α’ 규모의 금융부문 민생 안정 대책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저소득 청년의 이자 부담을 연 141만~263만원 깎아주고, 취약계층을 위한 10조원 규모의 저금리 정책대출을 별도로 공급하겠다고 했다. 청년층 채무가 코인과 주식 ‘빚투(빚내서 투자)’로 발생했다는 인식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이자 부담을 줄여주고 오히려 ‘돈을 더 빌려주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형평성 논란도 적지 않다. 청년·저소득층에만 혜택을 주고 40대 이상의 코인러나 주식투자자를 위한 지원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최근 여당에 대한 청년층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정책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90일 이상 원리금을 갚지 못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부채를 최대 90% 감면해주는 지원책을 놓고도 ‘모럴 해저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거치 기간을 연장하거나 이자를 감면받는 대신 원금을 탕감받을 수 있는 ‘연체’를 선택하는 게 유리해서다. 코로나19 사태로 영업난을 겪으면서도 성실하게 빚을 갚았던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오는 9월 말 종료를 앞둔 소상공인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에 따른 대응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대출해준 은행이 대상 차주의 90~95%에 대해 자율적으로 다시 만기 연장 및 상환 유예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율’이란 표현이 붙었지만 5~10%를 제외한 차주에 대해선 재연장의 성격이 짙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부행장은 “기존에도 재연장하지 않는 차주가 5~10%가량 됐다”며 “사실상 연장을 원하는 차주는 모두 은행이 받아주라는 것으로 ‘관치’와 다름없다”고 꼬집었다.은행으로선 대출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해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에 헐값으로 넘기느니 만기를 늘려주는 게 유리하다. 한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는 “민간 금융회사를 동원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정부가 ‘125조원’이라는 숫자를 앞세워 선심성·관치금융 정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빚 탕감 정책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문제는 위기 때마다 지적돼 왔다. 하지만 정부는 매번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한 채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가 정책을 발표한 뒤 홍준표 대구시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어머님이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렸던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빚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게 된다. 선심성 포퓰리즘을 배격한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홍 시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