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출입 금지' 고덕동 택배 갑질 사건 그 후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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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그라시움' 택배 갑질 사건 1년 3개월 후…지난해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났던 '택배 갑질'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단지 "KT 로봇배송서비스 시범단지 선정"
택배사 "저상 차량 도입, 배송 차질 없어"
주무부처 국토부, 여전히 미온적 대응
'갑'은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고덕그라시움' 아파트는 당시 택배 차량의 단지 내 진입을 금지했습니다. 지상으로 차를 운행하지 말란 얘기였습니다. 손수레로 배송하거나 저상 탑차로 개조하거나 변경해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달라고 공지했습니다.입주를 시작할 땐 이사 차량과 대형 가구 차량이 자주 다녀 차량의 지상 통행을 허용했지만, 택배 차량이 지상으로 다니면서 단지 내 크고 작은 사건들이 점차 늘어났고, '공원형 아파트' 콘셉트에 맞게 차량 통행을 막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가 입장을 하루아침에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는 사태가 터지기 1년 전부터 각 택배사 측에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여러 차례 보냈습니다. 연착륙을 위해 조율을 계속 시도했던 것입니다.
'을'인 택배사(전국택배노동조합)는 택배기사의 건강과 비용 문제를 이유로 들면서 전형적인 '갑질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개별 배송 중단을 선언하고 800여개 택배 상자들을 아파트 입구까지만 배송해 쌓아뒀습니다.이들의 주장은 '저상 탑차를 이용해 배송할 경우 택배기사들의 건강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상 차량은 탑차 안에서 허리를 90도로 굽혀 작업을 해야 하고, 물건을 싣고 내릴 때도 배송 기사의 손목, 발목 등에 무리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저상 탑차로 개조하기 위해서는 100만~200만원이 들어가는데 이 역시 배송 기사들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1년 3개월이 지난 현재 단지에선 자구책을 마련했습니다. 단지는 KT측과 '로봇 배송서비스' 시범 도입에 합의하고 최근 계약을 마쳤습니다. 1년 동안 일부 구역(101~139동)만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입니다.
KT측에 따르면 이 서비스는 택배사가 아파트 일정 구역에 택배를 배송하고 나면 로봇이 각 가구로 택배를 옮기는 서비스입니다. 아직 시범 단계라 구체적인 과정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이 단지 내에서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추후 상용화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해 4월 뜻하지 않은 택배 사태를 겪으면서 '택배 갑질 아파트'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면서 "이런 사태는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중장기적인 해법 마련을 위해 고민하다 이런 서비스를 도입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택배 업무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택배사들은 저상 탑차를 통해 단지 거주민들의 물건을 배송하고 있습니다. 한 대형 택배사 관계자는 "당시 이미 90%는 저상 탑차를 도입한 상황이었고, 이를 도입하지 않은 10%가 조치에 반발해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는 배송 서비스가 차질 없이 제공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단지 측과 택배사도 해결책을 강구해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국토교통부는 사실상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한 상황입니다. 국토부가 이를 중재해야하는 이유는 먼저 택배 산업 주무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비단 이 단지 뿐만 아니라 다른 단지에서도 빚어졌습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아파트에선 택배사가 아파트 입구까지 전달한 물건을 대행업체가 입주민 현관까지 배송하는 과정에서 택배 노동자로부터 일정 금액은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이런 요구에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택배사 등으로 이뤄진 지상공원아파트협의체가 구성됐고, 협의 과정에서 △사태 발생할 때 본사 개입을 통해 빠른 진화 △저상 탑차 도입 요구 △택배 노동자 신체적 부담 경감이 가능한 차량 개발 등 중재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통합물류협회 한 관계자는 "협의체에서 다양한 중재안이 나왔지만, 대부분 원론적인 내용에 대해서만 다뤄졌다"며 "논의가 확실하게 끝난 것도 아니다. 지난해 말까지 회의가 진행되다 올해 들어서는 한 번도 회의하지 않았다. 사실상 논의는 멈췄다"고 전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