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이 지옥으로 변했다"…일상 파괴된 전세 사기 피해자들

빌라 400채 갭 투자한 30대 집주인, 세금 체납으로 전 재산 압류
"엄마 암 보험금 들어간 보증금인데…결혼 밀리고 퇴사 압박까지"
"행복해야 할 신혼집이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지옥으로 변했어요."올해 5월 신혼부부 전세대출 2억원을 받아 서울 성북구 빌라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한 예비 신랑 A(33)씨는 집에 들어간 지 일주일 만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하려 등기부등본을 뗐다가 집주인 B씨의 세금 체납으로 주택이 올해 6월 초 세무 당국에 압류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즉시 연락을 취해봤지만 B씨는 이미 잠적한 뒤였다.다음 달 결혼식을 앞둔 A씨는 "축하를 받아야 할 기간이지만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파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17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A씨처럼 B씨의 주택 압류로 보증금을 떼일 처지에 놓인 100여명의 세입자가 하루하루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0대 임대사업자인 B씨는 올해 3월 기준 서울과 의정부에 각각 395채와 3채의 다세대주택·오피스텔 등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문제는 B씨가 종합부동산세 36억 원 등을 내지 않아 이들 주택이 모두 압류됐다는 점이다.

만약 B씨가 계속 세금을 내지 않으면 주택들은 결국 공매에 부쳐지는데, 낙찰액 배당 순서에 따라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에 놓인다.

빌라는 아파트보다 매매 수요가 많지 않아 유찰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은평구 빌라에 사는 사회초년생 이모(27)씨는 이번 사태로 내년으로 계획한 결혼을 무기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암 보험금까지 빌려 마련했던 보증금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

변호사 상담을 받기 위해 회사에 수일간 휴가를 냈고, 출근해도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직장 상사로부터 "그렇게 일할 거면 퇴사하라"는 말까지 듣는 등 일상은 철저히 파괴됐다.

이씨는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시 등을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운이 나빴네요', '잘 알아보시지 그랬어요' 뿐이었다"며 "나라가 세금만 챙기고 정작 세입자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최근 세 모녀 투기 사건이 발생한 뒤에라도 관련 조처를 해줬다면 저 같은 피해가 적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스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북구 빌라에 사는 박모(36)씨는 최근 꿈에 그리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지만, 마냥 기뻐하지는 못한다.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아파트 분양 대금 납부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서다.

박씨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유찰되는 상황이 많다고 해서 걱정된다.

다른 가족들의 형편이 넉넉지 않아 낙찰을 대신 받아줄 상황도 아니다"라며 "살면서 법도 잘 지키고 세금도 잘 냈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봉구 빌라에 사는 이모(33)씨는 올해 5월 친동생과 함께 본가에서 독립했지만 자취 생활의 설렘은 열흘을 채 가지 못했다.

그는 "압류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일주일 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었고 들어가면 숨이 턱턱 막혔다.

동네 근처에만 와도 계속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이들을 포함해 세입자 90여 명은 현재 SNS 단체 채팅방에 모여 형사 고소, 보증금 반환소송 등 대책을 논의 중이다.

보증금 피해액은 각각 2억∼3억 원대로, 단순 계산 시 총액은 225억 원에 달한다.아직 피해 사실을 모르는 세입자들도 다수 있을 것으로 보여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