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두 개로 분열된 미국

보수 우위 대법원
낙태의 헌법적 권리 파기
공공장소 총기 금지 위헌판결
'보수 vs 진보' 갈라져 위기

정치 양극화·경제 불평등이 원인
공동선 중시하는 열린자세
미국식 이상주의가 치유책

박종구 초당대 총장
미국이 두 개의 나라로 분열되고 있다. 보수와 진보, 레드 스테이트와 블루 스테이트, 낙태 찬성과 낙태 반대로 갈라졌다. 남북전쟁 이후 최대의 국론 분열이다.

보수 우위의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1973년)로 확립된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파기했다. 공공장소 총기 소지를 금지한 뉴욕주 법도 위헌으로 판결했다. 미국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낙태, 총기 소지, 종교의 자유, 기후변화에서 보수파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결정은 보수적 사법 적극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로 볼 수 있다. 미국 사회의 우경화가 가속 페달을 밟게 됐다.리 엡스타인 남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대법원이 1931년 이후 가장 보수적인 색깔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닐 고서치, 브렛 캐비노, 에이미 코니 베럿 등 3인이 우클릭을 주도했다. 보수적 대법관들이 오랜 전통인 ‘선례 구속 원칙’을 거부했다. 대법원이 사법 자제라는 과속 방지턱을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대법원을 트럼프 사법부라고 비난했다.

정치 양극화가 사회 분열의 주범이다. 대공황, 2차 세계대전, 전후 미국 정치를 이끈 공화·민주 양당 간 협력은 1970년대 이후 실종됐다. 닉슨 사임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 사건, 1990년대 뉴트 깅리치의 우익 선동 정치를 겪으면서 당파주의가 워싱턴의 뉴노멀이 됐다. 공화당의 우경화가 협치를 종식했다. 공화당은 총기 규제와 낙태를 반대하고 감세와 규제 완화를 지지한다. 작은 정부 정당에서 반정부 정당으로 변신했다. 소수인종 인권과 빈부격차 해소를 중시하는 민주당과의 대립이 불가피하다. 지역 신문의 침체로 언론의 감시 기능이 약화했다. 2004년 이후 2100개 지역 신문이 사라졌다. 절반이 넘는 카운티에서 하나의 일간지만 발행되는 실정이다. 소수당이 반대하면 입법이 마비되는 비토크라시(거부 민주주의)의 부작용이 크다. 비토크라시가 공화당의 교활한 생존 전략이 됐다.

공화당은 작은 주를 배려하는 헌법상 원칙 덕분에 혜택을 받았다. 인구 58만 명의 와이오밍과 3900만 명의 캘리포니아는 똑같이 2명의 상원의원을 배출한다. 급속한 인구 구성 변화로 공화당의 장래가 불투명하다.2042년이 되면 비백인이 다수 인종이 된다. 4년마다 백인 유권자 비율이 2%포인트씩 하락한다.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의 판세를 좌우하는 경합 주에서 백인 유권자 비중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20~2036년 기간에 텍사스는 비백인 유권자 비중이 50%에서 60%로 급증한다. 조지아와 애리조나도 각각 7%포인트, 10%포인트 증가한다.

오바마와 트럼프 행정부에서 통과된 오바마케어, 감세, 금융개혁법안 등 6개 주요 법안의 야당 지지율은 3%에 불과했다. 사상 첫 흑인 여성 대법관의 상원 임명 동의 표결에서 공화당은 밋 롬니 등 단 3인이 찬성표를 던졌다. 당파주의가 미국 정치의 키워드가 됐다. 밥 돌 전 상원의원 주장처럼 상호 불신이 커지면서 협치가 실종됐다.

분열과 증오 정치의 중심에 트럼프가 있다. 그는 공화당의 킹 메이커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간선거 후보 경선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실과 괴리된 대안적 사실을 믿는 과대망상주의자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은 정신 나간 인물로 취급하지만 고졸 백인의 3분의 2, 복음주의 신도의 80%가 트럼프의 열성 팬이다.경제 불평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산층 비중이 2019년 51%로 하락했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중산층과 근로 계층의 부는 줄어든 반면 톱 10%에 부의 집중이 이뤄졌다. 지난 40년간 규제받지 않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미국 사회의 분배 구조를 악화시켰다.

최근 몬머스대 여론조사에서 성인의 88%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갤럽 조사에서 의회, 대법원, 군대 등 주요 기관의 신뢰도가 1989년 46%에서 올해 27%로 급락했다. 미국은 국가 위기가 발생하면 개인적 자유보다 공동선(共同善)을 중시하는 열린 자세를 보여줬다. 미국식 이상주의가 되살아날 때 분열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