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어민 강제 북송' 두고 신·구 권력 정면충돌

정의용 "北, 송환 요청 안해
우리 정부가 북측에 먼저 타진"

대통령실 "공세 말고 협조 하라"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이 17일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의 핵심 사실 진위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총괄한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이 “북한으로부터 먼저 흉악범(탈북 어민)을 송환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자, 대통령실에서는 “정치 공세를 자제하고 사법당국의 조사에 협조하라”고 경고했다.

정 전 실장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흉악범 추방 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초청을 위해 귀순 의사가 있는 탈북 어민들을 강제로 북송시켰다는 여권의 주장을 반박했다.정 전 실장은 이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의 책임자다. 그는 “(탈북 어민들을) 추방할 경우 상대국의 인수 의사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북측에 먼저 의사를 타진한 것”이라며 “(어민들은) 희대의 엽기적인 살인마들로, 애당초 남한 귀순 의사가 없었다”고 말했다. 정 전 실장은 이어 “북한이 송환을 바라는 탈북민은 이런 흉악범들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탈북했거나 귀순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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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통령실에서는 최영범 홍보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정 전 실장의 주장을 받아쳤다. 최 수석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탈북 어민을 엽기적인 살인마로 규정하고, 자필 귀순의향서를 무시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야당과 지난 정부 관련자들이 해야 할 일은 정치 공세가 아니라 조사에 성실하게 협조해 국민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은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오른쪽)이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최 수석은 “이 사안의 본질은 우리 법대로 처리해야 마땅한 탈북 어민을 북측이 원하는 대로 사지로 돌려보낸 것”이라며 “그렇게 떳떳한 일이라면 왜 정상적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안보실 차장이 국방부 장관도 모르게 영관급 장교에게 보고받았냐”고 지적했다. 최 수석의 발언은 사건 당시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이 JSA 대대장으로부터 문자로 송환 계획을 보고받아 사건이 외부로 알려지는 계기가 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례적으로 대변인이 아닌, 홍보수석이 직접 브리핑을 했다는 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대통령실의 강력한 대응 의지가 엿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다수당인 야당을 직접 비판한 것도 이례적이라는 분석이다.

최 수석은 이날 탈북어민 사건과 대통령실의 부적절 채용 의혹을 연계해 국정조사를 하자는 야권의 요구에 대해서도 “특검이나 국정조사는 여야가 합의하면 피할 이유가 없다”며 “다만 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고 했다.

전범진/좌동욱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