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방 하나도 못 산다"…해외여행객 '부글부글' [이미경의 인사이트]

정부, 면세 한도 800달러로 상향 예정
면세·관광업계 회복 지원하겠다지만

면세업계 "고맙지만 큰 도움은 안될 듯"
소비자도 "면세점 제품 가격 경쟁력 그닥"
"면세한도가 200달러 늘었다고 추가로 살 수 있는 게 아주 많지는 않겠네요. 800달러라고 해봐야 명품 브랜드 가방 하나도 못 사는데요. 큰 혜택 같지는 않습니다."
정부가 여행자의 휴대품 면세 한도를 기존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상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업계와 소비자 모두 조정 폭에 대해 아쉬워하는 눈치다. 800달러 면세 한도 내에서는 고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기 어려워 면세 쇼핑을 즐길 유인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약 8년 만의 조정인 만큼 더 큰 폭의 한도 조정을 기대했다는 분위기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은 관광·면세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4년 이후 고정된 여행자 휴대품 면세 한도를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1979년 10만원이었던 면세 한도…현재까지 600달러

사진=김병언 기자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1979년 만들어진 면세점 구매한도는 최초 10만원으로 설정됐다. 이후 1988년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30만원으로 상향됐고 1996년에 화폐 단위를 원화에서 미국 달러로 바꿔 400달러로 적용했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600달러 한도는 2014년 9월부터 적용된 기준이다.

약 8년만의 면세 한도 상향이지만 업계에서는 이 정도로 업계의 부진한 실적을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면세업계 매출의 약 90%를 차지하는 중국인 매출이 전무한 상황에서 내국인이 200달러 추가로 면세 지출을 한다고 실적이 완화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한 면세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면세업체가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며 "정부의 발표가 있기 전까지 업계 내부에서는 한도를 1000달러로 높일 가능성이 점쳐졌다"고 말했다. 이어 "면세 한도를 1000달러로 두더라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실적을 개선하기 어렵다"며 "그런데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한도를 정해 다소 기운이 빠지는 상황"이라고 아쉬워했다.

국내 주요 면세업체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부진하다. 롯데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753억원, 2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현대백화점면세점 역시 14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신라면세점은 11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전년 동기(417억원) 대비 73% 급감했다.

고환율에 재고까지 없어…"800달러 한도, 매력적이지 않아"

사진=연합뉴스
고환율 사태가 겹친데다 코로나19 이후 면세점의 재고도 변변치 않아 소비자 입장에서도 800달러의 면세한도로는 면세 쇼핑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회사원 김은정 씨(34)는 "늘어난 면세 한도 200달러면 고가 화장품 1~2개나 더 살 수 있는 수준"이라며 "굳이 화장품을 조금 더 싸게 사기 위해 면세점을 이용하고 해외 여행을 가려고 하진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다음 달 베트남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박모 씨(37)는 "면세 한도 내에서는 소위 말하는 '명품' 브랜드 가방이나 옷을 사는 건 역부족"이라며 "이왕 한도를 높일 예정이라면 더 큰 폭으로 조정했더라도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면세업계는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내국인 수요 외에 외국인 수요를 잡야아한다고 보고 해외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산품 해외 판매를 시작한다. 롯데면세점은 지난달 온라인몰 '오버시즈 쉬핑'을 열고 중국·일본·미국·싱가포르·태국 등 9개국을 대상으로 국산 제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신라면세점은 이달 15일부터 알리바바의 자회사 '차이냐오'와 국산 품 온라인 역직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한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면세 한도를 기존 600달러로 유지하는 것보다는 상향 조정이 낫긴하다"면서도 "다만 이 정도 폭의 조정이 면세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 면세점 매출의 대부분이 외국인으로부터 나오는 만큼 역직구 플랫폼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수익성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