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뒤면 없앤다더니"…일몰규제 9200개 중 폐지는 고작 2.9%

모래주머니 찬 기업들
(7) '좀비 규제' 된 일몰제

안전운임제·대형마트 출점제한…
규제 일몰 시점 도래할 때마다
이해당사자 반발에 연장 또 연장
지난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파업으로 ‘화물 대란’ 원인이 된 안전운임제는 올해 말 폐지가 예정됐던 ‘일몰 규제’였다. 물류산업 내 경쟁을 제한하고 화주와 운송회사의 비용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에 따라 2020년 3년간 한시적 제도로 도입됐다. 하지만 일몰을 앞둔 올해 화물연대가 파업에 나서 물류대란이 일어나자 정부는 안전운임제의 일몰 시한을 3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이처럼 만료 시한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되살아나 기업 활동을 옥죄는 ‘좀비 규제’가 수두룩하다. 2010년 전통시장 보호 명분으로 도입된 대형마트 출점 제한 규제는 원래 3년 뒤 일몰 예정이었지만 12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살아 있다. 수차례 일몰 기한이 연장돼 폐지 시점이 2025년으로 미뤄졌지만 그때가 돼도 사라질 것이란 보장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사업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대형마트 출점 규제가)필요한 규제인지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4년 도입돼 2018년 일몰 예정이었던 고스톱 포커 등 웹보드 게임 규제도 아직 건재하다. 사행성 억제 명분으로 도입된 이 규제는 일몰 시한이 다가올 때마다 월 이용한도를 약간 올리는 식으로 연장되고 있다.

한국에서 규제 일몰제는 1997년 8월 도입됐다. 새로 규제를 도입하거나 기존 규제를 강화할 때 존속기한을 둬 주기적으로 규제 타당성을 검토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동 폐기는 적고 일몰 시한만 계속 연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15~2020년 만료 예정이었던 일몰 규제 9200개를 조사한 결과 당초 예정대로 폐지된 규제는 2.9%(266개)뿐이었고, 일몰 시한이 연장돼 살아남은 규제는 69.2%(6365개)에 달했다.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남아 있는 일몰 규제도 정부 전체에 걸쳐 최소 1800개가 넘는다.

대충 ‘땜질식’으로 규제를 만들다 보니 일몰 시점이 가까워질 때마다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반복되는 것도 일몰 규제의 문제로 꼽힌다. 화물연대 역시 올해 말 안전운임제 일몰에 반대해 파업을 벌였다.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억제하는 규제도 마찬가지였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는데 당시 일몰 일정은 2016년였다. 하지만 정부는 중고차 업계의 눈치를 보면서 이후 두번 적합업종 지정을 연장했다가 2019년에 가서야 해제했다. 중고차 업계는 이후에도 계속 반발했고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은 올해 들어서야 가능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몰 규제에 대한 사후 평가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규제학회장)는 “정부가 일몰을 연장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제대로 된 근거 없이 판단하고 있다”며 “해외 사례도 살피고, 시뮬레이션도 하면서 정확히 판단해 폐지할 것은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일몰이 도래한 규제는 즉시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일리노이주는 규제일몰법을 제정해 연도별로 폐지될 법률을 열거한다. 뉴햄프셔주는 행정절차법에 일몰 규제와 관련해 “8년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호주는 10년이 지나면 규제가 다 없어지고 다시 필요하면 재입법한다”며 “규제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 입증하는 재입법 방식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조미현/김소현/정의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