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열 번째 직장' 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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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경 CJ사회공헌추진단장 hk.min@cj.net최근 가까운 교수님의 부탁으로 대학생들에게 특강할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이 좀 기운이 없어 보여 소중한 2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내느라 그런가보다 했는데, 대부분 학생이 ‘잃어버린 학창 시절’보다 취업 문제가 더 절실하다고 했다. 따라서 자연히 취업과 구직에 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나는 지금 직장이 열 번째다. “여덟 번은 내 발로, 한 번은 나가라고 해서 나왔다”고 했더니, 학생들은 내가 스카우트 제의라도 받고 옮긴 줄 아는 눈치였다. 그러나 주로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이직하면서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매번 면접을 많이 보면서 어렵게 직장을 구해야 했다.특히 미국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마치고 첫 직장을 구할 때는 삼십 군데 넘게 지원했는데, 대부분 서류 전형에서 떨어졌고 면접까지 간 곳도 불합격 통보를 받곤 했다. 미국에서 2년 MBA를 한 영어 실력으로 미국 학생들과 경쟁해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불합격 통보는 항상 “귀하처럼 유능한 사람을 채용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와 같이 공손했지만, 오히려 더 비참해졌다.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에 내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생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면접을 많이 봐도 늘 긴장하는 건 똑같아서, 한번은 면접을 본 사무실에 핸드백을 두고 나왔다가 되돌아간 적도 있다. 그렇게 정신없는 사람을 뽑는 곳은 없었는지 다음날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결국 나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졸업이 가까워졌는데, 학교 취업사정관이 (내가 거의 마지막이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버금가는 사명감으로 이력서를 다시 봐주고 모의 면접도 여러 번 시켜줘 한 회계법인에 합격했다.면접을 많이 하다 보면 스킬은 확실히 늘어난다. 어떤 면접관이 “여자들은 돈만 많이 달라고 하고 대우만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안 뽑으려고 한다”고 말했을 때도 (당시에는 이런 면접관도 있었다) “저는 딸 여섯에 아들 하나 있는 집에서 자라 대우 안 받는 데 익숙하니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되고, 돈은 많이 주시면 됩니다”라고 맞받아치는 여유까지 생겼다.
학생들은 내게 직장을 계속 찾을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지만 사실 그런 건 없다. 첫 번째 시도에 ‘신의 직장’에 합격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완벽한 직장도 없다. 그리고 원하는 곳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있는 법이다. 그러니 면접이 단순히 회사가 나를 ‘뽑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가장 잘 맞고 내가 필요로 하는 직장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
나중에 교수님을 통해 들으니 학생들이 “저는 아직 열 번도 안 떨어졌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다림의 과정이 쉽진 않겠지만, 열정과 끈기를 갖고 높은 취업의 벽을 잘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반드시 길은 있는 법, 모두가 꼭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