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재의 새록새록] 꿈틀대는 뱀을 패대기…숨을 멎게 하는 호반새

올해는 뱀 대신 개구리만 잔뜩 물고 와…안전하게 둥지 떠나
올해는 희귀 여름 철새 호반새의 결정적인 장면을 담는 데 실패했다. 호반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위기 등급 관심 대상 동물이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여름 철새다.

온몸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 불새로 불리는 호반새는 부리가 크고 두꺼운 외모와는 다르게 울음소리가 독특하고 매우 청량하다.

그러나 깊은 숲속에 사는 데다 개체 수가 적어 직접 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 호반새가 숲이 우거진 산간 계곡을 낀 동해안의 한 천년고찰 앞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올해도 어김없이 둥지를 틀었다.
계곡에 '쿄로로로∼'하는 청량하고 아름다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호반새가 왔음을 알린다.

특별한 간섭이 없으면 매년 같은 둥지를 수리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올해도 이곳을 잊지 않고 다시 찾은 것이다. 스님의 불경 읽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곳에 둥지를 튼 호반새가 지난 6월 육추를 시작했다.

호반새는 초기 여치와 매미와 같은 곤충 등 작은 먹이를 가져다 먹였다.

작은 물고기나 가재, 풍뎅이 등을 잡아 먹이다 시간이 흘러 새끼가 좀 더 크면 개구리와 쥐, 도마뱀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 와 먹였다.
산간 계곡 특성상 한동안 개구리가 주를 이뤘다.

독이 있는 걸로 알려진 무당개구리도 단골 메뉴다.

그러나 둥지를 떠나는 이소 시점에는 뱀 등을 사냥해 와 먹이게 된다.

거칠고 험한 세상으로 새끼가 나가기 전에 이른바 보양식을 먹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호반새의 결정적인 장면은 이소 시점에 뱀을 물고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 키보다 더 긴 뱀을 물고 와 둥지 앞 나무에 앉아 패대기치며 기절시키는 장면이다.
둥지 앞까지 가져온 뱀은 이미 죽은 상태가 대부분이지만 일부는 살아 있어 머리를 빳빳이 세우고 꿈틀대며 끝까지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그러면 호반새는 죽을 때까지 수없이 패대기를 친 후 새끼에게 물어다 준다.

아직 이소하지도 못한 어린 새끼들이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할 정도 크기의 뱀도 물어다 주고는 바로 둥지를 떠난다.

그러면 둥지 밖으로까지 길게 늘어졌던 뱀도 곧 둥지 속으로 사라진다.

새끼가 뱀을 먹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귀한 장면을 마주하게 되면 숨이 멎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유난히 많은 뱀을 물어왔다고 해 올해도 큰 기대를 했으나 '꽝'이었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먼 길을 나서 뱀 물고 오기를 학수고대했으나 원하는 그림을 얻지 못했다.

이소 시점에 비가 계속 내려 변온동물인 뱀이 밖으로 나올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뱀이 보여야 뱀을 잡아 와 먹이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개구리 물어오는 것만 잔뜩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호반새는 며칠째 계속 비가 내리던 날 새끼를 데리고 안전하게 둥지를 떠났고 다음 날 비로소 해가 반짝 났다. 이소한 뒤 새끼에게 충분한 보양식을 먹여 건강하게 키우고 있을 거로 생각하며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