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공장 증설 '보류'…최태원 "전술적 투자 지연"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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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서 신규 팹 투자계획 '제동'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SK하이닉스가 충북 청주공장 증설을 미루기로 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과도한 투자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올 하반기 경기 침체 우려로 "투자가 지연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글로벌 불확실성 커져"
1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청주 신규 반도체 공장 증설 안건을 보류했다.그동안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지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신규 반도체 공장(M17)을 증설할 계획이었다. 약 4조3000억원을 투자해 2025년 완공하는 게 목표였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 착공을 위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고물가와 고환율·고금리 등 복합위기로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지면서 투자 계획을 미룬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13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제주포럼에서 "(하반기 경기 침체로 인해) 전술적 측면에서 투자 지연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 측은 향후 증설 일정에 대해서는 결정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최근 세계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업황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 또한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 하락세에 진입한 글로벌 D램 업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인플레이션, 중국 경기 둔화 등에 따른 정보기술(IT) 기기 수요 둔화로 한동안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렌드포스는 올 3분기 D램 가격이 2분기보다 10% 가까이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전망치(-3~8%)보다 눈높이를 더 낮췄다.메모리반도체 낸드플래시 가격도 최근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청주 신규 공장에서 D램과 낸드 중 어떤 반도체를 생산할지는 향후 시장 상황을 보고 결정할 방침이었는데, 현재로선 둘 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원화 약세까지 겹쳐 원자잿값 등 수입 물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투자 비용이 당초 구상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증설 계획 보류 결정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가 내년 설비투자 계획도 조정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SK하이닉스가 전자기기 수요 감소를 고려해 내년 자본 지출을 16조원으로 25%가량 줄이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수요 둔화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투자계획을 조정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최근 2분기에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호실적을 발표하고 연간 매출액 증가 전망치도 기존 26∼29%에서 30%대 중반으로 상향 조정했음에도, 장비 리드타임(주문부터 실제 납품까지 걸리는 시간) 증가와 재고 상황을 고려해 시설투자(CAPEX) 계획은 기존 400억∼440억달러에서 400억달러로 하향 조정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지난달 말 실적 발표에서 "향후 수개 분기에 걸쳐 공급 증가를 조절하기 위해 조처하고 있다"며 "신규 공장·설비투자를 줄여 공급과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