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니클라우스가 이름 걸고 만든 골프장…"어렵지만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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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그니처 홀'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GC코리아는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골프 코스’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공이 떨어질 만한 곳마다 해저드와 벙커를 파놓은 데다 그린도 마구 구겨놓은 탓이다. 그래서 이곳을 경험한 아마추어들은 “다른 골프장보다 10~20타 더 나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5) 잭니클라우스GC코리아 18번홀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
해저드·벙커밭에 그린도 구겨놔
다른 골프장보다 20타 더 나와
PGA 수준 '극강의 난이도'
코스의 '얼굴'은 488야드 파5홀
길고 정확하게 쳐야 파 가능
예측 어려운 서해바람도 읽어야
그린은 거북이 등처럼 흘러내려
니클라우스가 이름 허락한 골프장
세계 30곳…아시아에선 단 두곳
설계부터 보완까지 전 과정 맡아
프레지던츠컵 등 세계대회 열어
이 골프장의 시그니처홀은 18번홀(파5)이다. 어느 홀 하나 만만치 않은 17개 홀을 돌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골퍼들을 맞이한다. 새파란 잔디와 찰랑찰랑한 워터해저드가 만들어낸 경관은 더할 나위 없이 멋있지만, 스코어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오게 하는 홀이다. 이 홀에서 파를 하려면 멀리, 정확하게 쳐야 한다. 블랙 티에서 홀까지 545야드에 이르는 데다 큼지막한 워터해저드가 페어웨이를 감싸고 있어서다. 강한 서해 바람도 읽어야 한다.
PGA 수준의 난도 높은 골프장
드라이버를 건넨 캐디는 “이 홀에선 앞바람은 원수, 뒷바람은 은인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날 바람은 원수였다. 맞바람 탓에 화이트 티(488야드)에서 ‘3온’ 하기도 버거운데, 김종안 잭니클라우스GC코리아 사장은 “설계자의 의도를 읽으려면 블랙 티에서 쳐야 한다”며 기자를 뒤로 내몰았다. 첫 번째 티샷은 우측으로 밀리면서 사라졌다. 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은 짧아서 물에 빠졌다.2010년 문을 연 잭니클라우스GC는 ‘골프 레전드’ 잭 니클라우스가 자신의 이름을 내어준 세계 30여 개 골프장 중 하나다. 아시아에선 이곳과 니클라우스베이징클럽 등 딱 두 곳뿐이다. 니클라우스는 골프장 위치 선정부터 설계·시공·보완 등 모든 단계에 자신의 철학을 녹여낸 곳에만 자신의 이름을 허락한다. 가평베네스트, 세이지우드 등 그가 설계한 골프장은 국내에도 많지만, 이곳처럼 직접 하나하나 챙기진 않았다는 얘기다.
이 덕분에 굵직한 대회들을 열었다. 라이더컵과 함께 ‘세계 골프팬들의 축제’로 불리는 프레지던츠컵(미국과 인터내셔널팀의 골프대항전)을 열었다. 2015년 대회 때 인터내셔널팀의 배상문 프로가 ‘범프 앤드 런(그린 앞 언덕을 맞혀 공의 속도를 줄인 뒤 홀 주변까지 굴러가게 하는 어프로치 샷)’을 시도했다가 고개를 숙인 곳이 바로 이 골프장의 18번홀이다. 2018년엔 여자 골프 국가 대항전 UL인터내셔널크라운을 개최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도 2017년부터 쭉 이곳에서 열린다. 프로대회에 맞게 코스를 세팅하다 보니 아마추어들이 헤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올 벤트그라스’의 위력
화이트 티로 자리를 옮겼다. 블랙티보다 60야드 정도 짧지만, 488야드로 만만치 않은 길이다. 다섯 번째 샷은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하지만 두 번째 샷으로 날린 공이 홀 약 80m 앞에 있는 벙커 옆 갈대숲으로 사라졌다. 무릎 높이의 풀숲을 헤맸지만 헛수고였다. 김 사장은 “2년 전 제네시스 챔피언십에 출전한 박상현 선수도 여기로 공을 보냈다가 결국 ‘로스트볼’ 선언을 받았다”고 했다.잔디는 잭니클라우스GC를 ‘명품’으로 만든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중지’로 불리는 조이시아그라스보다 관리비가 두 배 가까이 더 드는 벤트그라스를 코스 전체에 깔았다. 촘촘하면서도 납작 엎드린 잔디 위에 놓인 공을 어설프게 쓸어쳤다간 십중팔구 ‘토핑’이다. 벤트그라스의 위력은 그린 앞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짧았던 아홉 번째 샷이 그린에 못 미치면서다. 하필이면 배상문이 범프 앤드 런을 시도했던 곳과 비슷한 위치였다. 김 사장은 “이곳에선 퍼터로 쳐도 된다”고 조언했다.
쓸어치는 데 익숙하다 보니 웨지로 잘 칠 자신이 없었다. 퍼터로 강하게 쳤지만 오르막 경사를 이겨내지 못했다. 다시 흘러 내려와 발 앞에 멈춘 공을 이번에는 거의 풀 스윙하듯이 쳤다. 그제야 공은 그린 위로 올라갔다. 그린에 올라가 보니 왜 배상문이 그 자리에서 공을 띄울지, 범프 앤드 런을 할지 고민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북이 등처럼 생긴 그린은 조금만 짧거나 길어도 공을 밖으로 뱉어내는 구조다. 결국 이 홀에서 적어낸 스코어는 ‘더블 파’. ‘뒷문’이 열려 있었다면 12타, 셉튜플 보ㅈ기(+7)였다.넋이 나간 표정을 짓자 김 사장은 “PGA(미국프로골프)투어 난도이니 다들 어려워한다. 스코어가 나쁘다고 서운해할 필요 없다”며 웃었다. 이달 잭니클라우스GC의 비회원 그린피는 주중 27만원, 주말 36만원이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