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글로벌 공급망 위기 벗어나려면

"무역 의존도 높은 한국 타격
이제는 정부가 공급망 주체
산업과 통상전략 새로 짜야"

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에너지밸리포럼 대표
코로나로 심화한 국제적인 공급망 차질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금세기 들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국경 봉쇄와 생산 차질로 제품이 제때 공급되지 않고, 많은 나라에서 선박 하역과 트럭 등 물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일상생활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곡물과 에너지 등 원자재까지 공급 애로가 파급돼 세계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한다.

특히 한국처럼 제조업 중심의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는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에서 벗어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지금의 공급망 위기가 해소될 수 있을까? 당장은 지금 상황보다 나아지겠지만 근본적인 위험은 가시지 않고 큰 불확실성으로 남을 것이다. 통상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해소되면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현재의 세계 경제 체제를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로 보고 변화를 추구한다면 그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그런 징후는 세계 경제의 양 축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발생할 때 이미 시작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과 산업정책에 대해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외치고 제조업의 리쇼어링을 추진할 때부터 현 상황이 궁극적인 도착점이 될 수 없었다. 현재의 상태가 만족스러우면 문제를 일으킨 원인을 해소해 해결하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그 근본 원인으로 보고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양자 간 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급망 위기라는 결과를 보면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가려고 한다.

현 세계 경제 체제에 많은 과제가 있음에도 공급망 위기를 우선 꼽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어 보인다. 사실 에너지나 식량 같은 전략물품이 아닌 제조물품의 공급망 위기 대처는 민간 기업이 주체였고 정부는 비상시에 대비한 비축이나 가격 통제 같은 보조적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지금은 안정적인 공급망(supply chain)을 구축하는 주체가 기업이 아니라 정부로 인식된다. 전시에 ‘보급선(supply line)’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책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또한 위기만 벗어나 현상을 회복하는 데 만족했다면 공급망 대응에서 과거 금융위기 대응 때처럼 G20나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세계적인 국제 공조를 취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국가가 현재의 공급망 위기를 복합적 요인으로 진단하고 있다. 특히 조 바이든 정부는 공급망 대응 계획에서 기존의 틀이 아니라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산업의 쌀이라고 하는 반도체 동맹을 결성하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협상의 주요 범위에 공급망 안정을 포함하고 있다.이런 글로벌 공급망 위기 대응은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각별하다. 기후변화 등 국내외적 도전에 처한 기업들로서는 공급망 대응까지 하려면 그 부담이 매우 크다. 대기업은 설비 재구축 등을 통해 나름대로 대처를 해가겠지만 중소기업은 대응 역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둘째, 이 위기에 대응하는 데 나라마다 산업구조나 이해관계의 차이가 커서 해법에 공통분모를 찾기 쉽지 않다. 이제 출범한 IPEF 협상도 공급망 재편을 위한 세부적 내용에 가면 기술과 투자 등 핵심 이슈에서 합의점을 찾기까지 난항이 따른다. 셋째,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국가에 따라 산업구조 재편과 제조업 공동화 등 논란도 예상된다.

한국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관세 인하와 국제 분업구조의 형성을 활용해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해왔다. 그런데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가속화하면 우리 같은 개방형 경제국가는 기술 자립이나 공급선 다변화를 뛰어넘어 산업과 통상 전략을 함께 새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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