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만큼 책임진다’ ESG 경영 앞장선 유통 공룡

월마트는 전세계 매출 1위인 전통 유통기업일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경영의 대표 사례이기도 하다. 저가정책으로 규모를 키운 월마트는 자사의 영향력을 지속가능 경영 확산을 위해 사용한다. 공급업체를 모아 재생에너지 교육을 실시하고 공동 구매계약도 지원한다
[한경ESG] 베스트 프랙티스 - 월마트
월마트 로고.사진 제공=월마트
미국의 대형 슈퍼 체인 월마트는 전 세계 매출 1위 기업이다. 2022년 회계연도 매출액은 5730억 달러. 현재 운영 중인 매장은 24개국 1만585개에 이른다. 테크 기업의 성장과 디지털전환 속에서도 전통적 유통 기업 월마트는 여전히 견고하다. 비결은 월마트의 모토인 ‘Everyday Low Price(상시 저가 정책)’다. 1962년 미국 아칸소에서 시작한 첫 매장부터 지금까지 월마트를 성장시킨 키워드다. 카트리나 재해 구호 이후 달라진 평가

월마트의 정체성은 지금도 그대로다. 하지만 사람들은 월마트의 다른 것을 평가한다. 바로 지속 가능 경영이다. ESG가 대세가 되기 전부터 월마트는 지속 가능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혔다. 월마트를 바꾼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저가 정책을 유지하며 규모를 키운 기업은 늘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공급업체 비용 절감과 저임금, 지역 상권 파괴 등 대형 유통 기업에 따라오는 비판이다. 월마트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을 잠식하는 거대 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하지만 월마트는 괘념치 않고 정책에 몰두했다. 2005년, 미국 남부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쳤다. 당시 월마트는 발 빠르게 나서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의 수재민을 도왔다. 대형 물류망을 이용해 구호품을 신속히 조달했다. 비판받던 월마트의 규모와 영향력이 선한 결과로 이어진 순간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월마트 CEO였던 리 스콧은 지속 가능 경영을 선언한다.

리 스콧은 “월마트가 국가라면 20번째로 큰 국가, 도시라면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규모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며, 그럴 권리가 있다. 우리의 규모와 범위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기업보다 전 세계에서 큰 성공과 영향을 지닌 독특한 위치에 있다”며 “만약 이 나라와 지구를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규모와 자원을 사용한다면 어떨까?”라며 질문을 던졌다.

리 스콧은 환경문제는 “카트리나의 슬로모션과 같다”며 환경 손실이 인간과 자연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서 환경문제를 기업 스스로의 문제로 인식했다. 환경과 지역사회를 지키는 일과 효율적이고 수익성 있는 사업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카트리나 재해 상황에서 보여준 규모의 영향력을 지속 가능성을 위해 써야 할 때임을 깨달은 것이다. 리 스콧은 환경 목표로 첫째 재생에너지 사용 100%, 둘째 폐기물 제로, 셋째 인간과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제품 판매를 선언했다. 물류, 상점 운영, 폐기물, 제품, 소싱, 건강, 임금 등 주요 부문에서 지속 가능 전략을 구상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이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리 스콧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라”고 했다. 비전과 목표의 제시, 거대한 유통 공룡의 변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사진 제공=월마트
공급업체의 변화도 이끌어

더글러스 맥밀런 월마트 현 CEO도 2005년의 로드맵을 이어받았다. 2016년 지속 가능 의제를 강화하고, 2025년까지 월마트 탄소배출량을 18%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커피, 차, 바나나 등 20가지 핵심 상품을 선정해 지속 가능한 조달 시스템을 구축했다. 유통 기업인 월마트의 지속 가능성은 공급업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 탄소배출량 대다수가 제품의 공급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에서는 한 기업의 결정과 실행만으로 지속 가능성을 완성할 수 없다. 2017년 월마트는 기가톤(Gigato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공급업체와 함께 2030년까지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온실가스 배출 10억 미터톤(1기가톤)을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공급업체는 에너지·폐기물·포장·운송·제품 사용 등 주요 영역별로 배출 감소 목표를 설정하고, 진행 과정을 추적하고, 인증을 받는다. 중소규모의 공급업체가 기후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월마트는 자체 플랫폼을 통해 공급업체에 컨설팅과 전략을 제시한다.

월마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공급업체 4500개 이상이 기가톤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총 5억 7400억 미터톤 이상의 배출량이 감축됐으며, 목표치 기가톤의 절반을 달성했다.

기가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0년에는 기가톤 PPA(전력 구매 계약) 프로그램도 론칭했다. 재생에너지 접근성이 낮은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통합적 에너지 솔루션을 제공한다. 세계적 에너지 솔루션 기업인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협업해 만든 툴이다. 공급업체를 상대로 재생에너지 메커니즘 등에 대해 교육하고 재생에너지 채택을 가속화하도록 설계했다. 관심 있는 기업은 그룹별로 모여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월마트 플랫폼 내에서 공급업체를 모아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것이다.

월마트 측은 “미국 재생에너지 시장에 참여하는 기업은 100개 이상으로 기업 수가 적은 편이다. 기업의 규모 부족, 재생에너지 거래 메커니즘에 대한 교육 부족, 재생에너지 확보 방법 부족 등의 원인이 있다“며 “기가톤 PPA는 공급업체가 저탄소배출을 향한 다음 단계를 수행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는 일종의 혁신 실행”이라고 강조했다.
월마트에서 시행하는 공급망 관리 프로그램 기가톤 프로젝트.사진 제공=월마트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 검사 센터 운영

월마트는 2005년부터 ESG 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지난해 월마트의 ESG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까지 기업 운영의 직접적 영역인 스코프 1(직접배출)·2(전략 사용 등 간접배출) 부문에서 탄소배출 12.1%를 감축했다. 스코프 3(공급망 등 외부배출) 부문은 기가톤 프로젝트를 통해 감축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36%. 2025년까지 50%, 2035년까지 100%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매립지로 갈 폐기물 81%를 전용했다.

지속 가능성 외에는 기회, 커뮤니티, 윤리와 통합 부문에 집중해 보고한다. 저임금 노동환경과 지역 상권 잠식 등은 그간 비판을 많이 받은 분야였다. 기회 부문은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2021년 기준 월마트 미국 지역 시간당 평균 임금은 19.5달러. 보너스 수당으로 총 28억 달러를 지급했다. 약 30만 명이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책임을 지는 자리로 승진했다. 승진한 관리직의 46%는 여성, 39%는 유색인종이었다. 커뮤니티에서는 코로나19 지원에 힘썼다. 미국 전역에 코로나19 검사 센터를 500개 이상 운영했다. 코로나 대응 노력에 4300만 달러를 투입하며, 월마트의 규모와 영향 범위가 또 한 번 힘을 발휘했다. 최대 규모의 기업이 지속 가능 경영을 하면 최대 규모의 지속 가능 경영 사례가 된다. 규모만큼 책임을 지는 것. 이 단순한 윤리를 월마트가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독일)=이유진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