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돌연 상장 철회…"제대로 된 가치평가 어려워져"

유가·비교기업 주가 하락 '암초'
세번째 철회…신뢰 저하 불가피
올 하반기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던 현대오일뱅크가 돌연 상장을 철회했다. 2012년, 2018년에 이어 세 번째다. 증시 침체와 국제 유가 하락 등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시장에서는 의아하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오일뱅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6월 말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해 연내에만 상장을 완료하면 된다. 앞으로 5개월 동안 시장 상황을 지켜봐도 되는데 서둘러 상장을 포기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최근 주식 시장 상황과 동종업체 주가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IPO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더 이상 기업공개를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증권가는 현대오일뱅크의 결정에 당황하는 분위기다. 상장 주관사도 이날 오전 철회 소식을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갑자기 상장을 접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20조6066억원, 영업이익 1조1424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7조2426억원, 영업이익 7045억원의 좋은 실적을 올렸다.

현대오일뱅크는 당초 IPO를 통해 10조~12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하지만 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지고 국내 1위 정유사인 에쓰오일 주가가 지난달에 비해 약 30% 하락하면서 10조원대 기업가치를 자신할 수 없게 됐다. IB업계 관계자는 “공모 규모도 1조원 이상을 목표로 했지만 현재 시장 상황에서는여의치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완벽한 시점에 상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경영진을 지배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세 번이나 추진하던 IPO를 철회하면서 현대오일뱅크는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올초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이 무산돼 현대중공업그룹 차원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 수요가 줄어든 것도 상장 철회의 요인으로 꼽는다. HD현대(옛 현대중공업지주)가 2019년 현대오일뱅크 지분 17%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업체인 아람코에 매각해 1조3749억원을 마련하는 등 자금 사정도 나쁘지 않다. 정유업계는 현대오일뱅크가 상장 대신 배당을 늘리는 전략으로 선회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5281억원을 배당했다.

전예진/김익환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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