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체성 잃은 정의당의 재정파탄

유권자 외면에 지지율 2~3% 불과
'정의당다움' 실종이 위기 원인

전범진 정치부 기자
원내 3당인 정의당이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36억원에 달하는 부채 이자와 당직자 임금 등을 감당하지 못해 지난 19일에는 의원들에게 1억2000만원을 빌렸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당사도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옮길 계획이다. ‘정의당 파산설’이 떠도는 가운데, 이은주 비대위원장이 직접 “당이 돌려막기 차입으로 연명하고 있다”고 인정할 만큼 긴박한 상황이다.

재정난의 직접적인 원인은 잇따른 선거 패배다. 2020년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의당이 은행들로부터 대출받은 43억원은 심상정 의원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이 낙선하며 갚아야할 빚이 됐다. 6월 지방선거에선 진보당(21명 당선)보다 못한 성적(9명 당선)으로 빚이 늘었다. 예윤해 정의당 부대변인은 “지선에서 청년 30% 공천이라는 기준에 맞춰 후보들을 내세우고, 재정 사정이 빈약한 청년 후보들을 지원하다 보니 당의 부채가 불어나게 됐다”고 설명했다.하지만 이면에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당원과 유권자의 외면이다. 대선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은 2~3% 안팎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양당의 지지율이 요동쳐도 정의당으로 유입되는 지지율은 미미하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정의당을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분석이다. 당원 이탈은 더 심각하다. 당비를 납부하는 핵심 당원은 3년 전만 해도 4만 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1만 명대로 쪼그라들었다.

정의당 내부에서는 ‘정의당다움’의 실종이 위기 이유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이나 대선 후 검찰 수사권 조정 등 주요 국면에서 캐스팅보트로 존재감을 드러낼 뿐, 어떤 지향점이나 정체성을 갖춘 정당인지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6월 지선에서 정의당의 마포구청장 후보로 나섰던 조성주 정치발전소 이사는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가를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에 몰두하느라 진보 정당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설명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의 위기는 거대 양당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는 국민의힘과 ‘노무현 정신’을 정체성으로 하는 민주당이 지금처럼 쉽게 소신을 굽히고 타협한다면 언제든 유권자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