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3조 감세, 재정지출도 함께 줄여야 의미 있다

정부가 어제 13조원 규모의 세 감면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1주일 전 ‘민간중심 역동경제’를 주제로 경제정책 밑그림을 공개한 후 내놓은 세부 정책안이다. 복합경제위기 속에 코로나 재유행까지 겹쳐 가뜩이나 시름하는 서민·중산층, 기업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개편안은 오랜만에 보는 대규모 세 감면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그동안 이념과 편견에 뒤틀려 있던 세제를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전 정부가 주요 경쟁국의 감세 경쟁 속에서 ‘나홀로 증세’로 역주행한 법인세를 이전 수준(22%)으로 복귀시켰고, 14년째 방치해 사실상 ‘봉급자 증세’로 이어졌던 근로소득세 과표 구간도 조정했다. 세계 유례없는 징벌적 과세인 종합부동산세도 이미 예고한 대로 손질했다. 여기에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이른바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대기업의 시설투자 세액공제 비율을 2%포인트 올려주는 등 미래를 준비하는 개편안도 포함됐다. 세제 전반에 걸쳐 과감한 전환 노력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세율 그리고 부과 방식에서 개선 여지가 많은 상속·증여세, 경쟁국들에 비해 높은 면세자 비중(37.2%), 종부세의 재산세 통합 등은 숙제로 남았다.민간의 역동성을 살리기 위한 감세는 바람직하지만 재정수지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세입이 감소하는 만큼 지출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퍼주기 정책으로 한국의 재정 문제는 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로부터 지속적 경고를 받아왔다. 새 정부는 ‘긴축재정’ 기조 전환을 선언하고 관리재정수지(연금 등 사회보험기금 수지를 제외한 통합재정수지)를 GDP 대비 -3.0%(지난해 말 -5.2%) 수준으로, 임기 내 국가채무 비율은 50% 중반(현재 50.1%)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감세가 이 같은 방침을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정부 말대로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 외에는 방도가 없다. 정부는 △재량지출의 10% 감축 △공공부문 자산 매각 △공무원 정원 및 보수 엄격 관리 등을 방안으로 내놨다. 그러나 재량지출 10% 감축만 해도 재정건전성 논란 때마다 역대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들었지만 제대로 성과를 낸 적이 없다. 집행 시기를 연기하는 등의 ‘꼼수’를 동원해 수치 맞추기에 급급했다. 올해 2차 추경(59조원) 편성 당시 7조원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충당했다고 한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보다 근본적이고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국고로 진행되는 대형 SOC사업을 전수조사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중단시키는 건 어떤가. 대선 과정에서 여야가 매표를 위해 야합한 14조원(국고 기준) 규모의 가덕도 신공항이 좋은 예다. 1200여 개에 이르는 민간보조금 사업도 마찬가지고, 해마다 국회와 시민단체에서 지적받는 예산 낭비 사례도 적지 않다. 공무원 임금과 정원 문제도 윽박지르기만 할 게 아니라 필요하면 국회의원들과 정부 고위 관료들부터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고통 분담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재정개혁 역시 말로는 성공하기 힘들다. ‘법인세 인하=부자 감세’ ‘감세=재정 악화’라고 하는 야당의 공격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근본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접근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