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펄펄 끓는 유럽

영국의 여름 날씨는 비교적 선선하다. 서안해양성기후 덕분에 7~8월에도 평균 최고 기온이 24도를 넘지 않는다. 그런 영국이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중부 지역 낮 최고 기온이 40.3도를 찍으며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9년(38.7도)보다 1.6도나 높다. 1659년 기상관측 이래 363년 만의 최악 폭염이라고 한다. 철로가 62도까지 달궈져 기차 운행이 중단될 정도다.

프랑스에서도 연일 40도를 웃도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스페인 45도, 포르투갈 47도 등 유럽 전역이 펄펄 끓고 있다. 심한 가뭄으로 강 수위가 너무 낮아져 뱃길이 끊어지고, 강풍에 산불마저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이번 폭염으로 벌써 1500여 명이 사망했다.원인은 뭘까. 영국 기상청은 북반부에 있는 5개 고기압의 영향, 기후변화, 가뭄에 따른 복사열 방출 등 3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포르투갈 연안에서 발생한 저기압이 아프리카의 뜨거운 공기를 유럽으로 유입시킨 게 결정타였다. 수분 없이 메마른 땅이 강한 복사열을 뿜어내며 대기를 달군 것도 한 요인이었다.

유럽은 2003년 여름에도 폭염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당시 두 달간 7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대형 식당 냉동고를 시체 안치소로 쓸 정도의 악몽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영국 기온이 40도를 넘지는 않았다. 온도계만 놓고 보면 지금이 더 심각한 모양이다.

유럽인들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폭염에 익숙하지 않다. 집을 지을 때 고온보다는 추위에 대비하는 쪽으로 설계한다. 대부분이 열을 집에 가두는 방식이다. 그러니 날씨가 더워지면 실내 온도가 빨리 올라가게 된다. 게다가 영국 가정에서 에어컨을 설치한 비중도 5%가 되지 않는다.문제는 이런 더위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연구에 따르면 향후 몇 년간 유럽 기온이 올라가는 속도는 전 세계 평균기온 변화보다 빠르고, 폭염 발생 빈도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나쁜 날씨란 없고 서로 다른 좋은 날씨가 있을 뿐”(존 러스킨)이라는 자기 위안도 별 소용이 없다. 기록적인 더위와 싸우느라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소방대원들의 하소연에 마음이 짠해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