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우영우 키우는 '한바다' 같은 기업들

* 새싹채소로 한 해 매출 38억원 올리는 전국 1위 기업 유은복지재단나눔공동체
* 연간 5억개 종이컵을 생산하는데도 불량률 '0'에 가까운 칠곡의 제일산업
* 장애인 60여명 모두 카페의 주인공인 바리스타와 로스팅전문가로 꿈을 펼치는 카페 히즈빈스
한경DB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의 성장스토리를 다룬 ENA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 콘텐츠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제2, 제3의 우영우를 키운 전국 현장의 ‘한바다’ 같은 기업들이 화제다.

50g 한 팩에 800원 하는 새싹채소와 베이비채소를 길러 한 해 매출 38억원을 올리며 전국 1위의 기업으로 성장한 안동의 유은복지재단나눔공동체(이사장 이종만, 원장 김현숙). 연간 5억개의 종이컵을 생산하는데도 불량률이 ‘0’에 가까운 칠곡의 제일산업(대표 정하일), 장애인 60여명이 모두 바리스타와 로스팅 전문가로 주인공인 카페 히즈빈스가 세상의 편견을 극복하고 '하루하루가 기적' 같은 성공 스토리를 써내고 있다.
1994년 유은나눔공동체를 설립해 세금 내는 장애인을 만들기위해 30년을 노력해온 이종만 유은복지재단이사장.

◆한 팩에 800원 하는 새싹채소로 38억 매출 올리는 전국 1위 기업, 안동의 유은나눔공동체

경북 안동의 유은나눔공동체는 전체 직원 51명 가운데 36명이 중증장애인이다. 반도체 클린룸 같은 먼지 한톨 없는 환경에서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입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어울려 일한다. 언어소통이 불가능한 청각 장애인들은 배추는 하트, 콜라비는 별 같은 버튼이나 기호, 수화로 의사소통을 한다. 김현숙 원장은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 공급되는 새싹채소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만, 김현숙 부부가 1994년 세운 이 회사는 처음에는 대기업 봉제 하청을 하다 2003년부터 새싹채소로 품목을 바꿨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위기를 맞은 회사는 장애인에 적합하고 중국 등 개도국과 가격 경쟁 하지 않을 아이템을 선택했다. 당시는 국내서도 새싹채소가 생소하던 시절이다.
36명의 중증장애인들이 새싹채소와 베이비채소를 길러 전국 1위의 기업 신화를 쓰고있는 경북 안동의 유은복지재단나눔공동체 김현숙원장과 직원들. /유은나눔공동체 제공
이종만 이사장은 “장애인들이 정부의 세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만드는 것이 30년 기업 운영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우영우 변호사처럼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중증장애인 2명을 포함해 지적장애인 12명, 뇌 병변 2명, 지체장애인 4명이 비장애인 근로자 15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의 작업능률은 비장애인의 20~60%에 불과하지만 여린 새싹채소를 돌보고 수확, 포장하는 일에 놀라운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자폐를 가진 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들이 우영우처럼 천재적 실력을 발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현장에서는 직장에 적응하는 자체가 기적 같은 일로 받아들여진다.특수학교 교사를 하다 남편과 함께 공동창업에 나선 김현숙 원장은 “비장애인 같으면 3일에 배울 일을 1년이 지나서야 적응하는 친구들도 있다”며 “끊임없이 기다려주고 기회를 주고 격려하는 과정을 거쳐 숙련 근로자가 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주된 업무는 장애인이 처음 회사에 오면 자폐아처럼 같이 머리와 손을 흔들고 놀아주면서 적응을 돕는 일이다. 김 원장은 “생산성이나 속도를 생각하면 우리 같은 기업은 탄생할 수 없다”며 “청각장애인은 지적장애인을 돕고, 자폐장애인은 지체장애인을 돕는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가 전국 1위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38억5600만원. 영업이익은 마이너스 3억9000만원, 당기순이익은 1억6800만원이다. 장애인들이 쉽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 대 3500만원 하는 드럼 재배기 16대, 자동세척기 등 최고의 시설을 갖춰 GAP 인증을 받았다. 직원들은 드럼 재배기 관리와 세척, 포장 등의 일을 주로 한다. 김 원장은 “비장애인을 고용했더라면 벌써 수억 원의 흑자를 봤을 테지만 우리의 목표는 수익이 아닌 장애인 고용 극대화”라며 “많은 장애인이 ‘격리수용’이 아닌 가족과 함께 살며 비장애인과 똑같이 출퇴근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부부 수화 통역사인 이들은 2013년 ‘한국의 노벨상’인 호암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제품에는 장애가 있을수 없다’는 신념으로 한해 5억개의 종이컵을 생산. 전국 3위 기업으로 성장한 칠곡의 제일산업 생산현장. /제일산업 제공

◆‘암은 치료할수있지만 불량은 못 고친다' 한해 5억개 종이컵 생산하지만, 불량률은 ‘0’에 가까운 칠곡의 제일산업

경북 칠곡의 종이컵 제조회사인 제일산업(대표 정하일)도 전체 근로자 28명 중에 중증장애인 18명이 근무하는 기업이다. 연간 5억개의 종이컵을 생산하는데 불량률이 0에 가깝다. 이곳의 장애인들은 종이컵의 불량을 찾아내는데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돌아가신 정 대표의 부친이 장애인들이 일하기 편하게 기계를 직접 개조해 공정을 자동화한 덕에 장애인들은 주로 검수나 포장 부분에 배치돼 일한다. 정하일 대표는 “자폐증을 가진 장애인 2명은 자기가 맡은 일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18명 중에 12명은 5~10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우수한 품질력 덕분에 다이소(아성산업)에, SK행복나래, 애터미 등 대형 거래처에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38억5000만원으로 올해만 4명의 장애인을 더 채용했다. 6,5oz 크기 종이컵 기준 전국 3위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 같은 모습의 정 대표는 경찰공무원(경장)을 하다 2019년 4월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자 전도유망한 경찰을 포기하고 가업을 승계했다. 1999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일해온 장애인들이 직장과 꿈을 잃고 다시 방황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9년 갑작스레 돌아가신 부친의 가업을 승계한 경찰 출신의 2세경영인 정하일 대표

◆전국 19곳 카페의 바리스타는 모두 장애인인 카페 히즈빈스

60여명의 장애인 바리스타가 우영우처럼 카페의 주인공으로 활동하는 히즈빈스 카페도 요즘 전국 카페 업계에서 화제다. 2009년 포항의 한동대생 3명이 창업한 향기내는사람들(대표 임정택,이민복)의 카페 히즈빈스는 전국 직영점과 가맹점이 19 곳으로 늘었다.
전국 직영점과 가맹점(사내카페)을 19개로 늘리며 폭풍성장하고 있는 카페 히즈빈스의 바리스타는 모두 장애인들이 맡고 있다. 이민복대표(뒷줄 두번째)와 직원들이 카페 매장에서 영업을 시작하고 있다. /향기내는사람들 제공
이 회사는 장애인 고용 대신 부담금을 내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직영점과 함께 기업이나 공기업이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는 사내 카페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 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 일할 수 있도록 선배 장애인, 사회복지사, 정신과 의사 등이 다각적으로 지지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2020년 특허도 획득했다. 지난해 매출 27억원을 기록했다. 장애인들의 현장 적응을 돕기 위해 가상현실(VR)과 게임을 활용해 업무 적응 훈련을 해 적응 기간을 70% 이상 단축했다. 이민복 대표는 “장애인들이 카페서 일하더라도 주로 청소 등의 일하지만 우리는 장애인들이 카페의 중심”이라며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MZ 세대들이 히즈빈스의 기업 운영 철학에 공감해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박철훈 소셜캠퍼스온경북 센터장은 “많은 사람이 드라마 우영우에 감동하는 이유는 장애인을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한바다’ 소속 동료와 선배들이 영우에게 보내는 따뜻함, 동료로 인정하고 함께 일하며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며 “경북의 세 기업이 10년~30년간 이룬 노력과 성과는 드라마 우영우 못지않다”고 평가했다.

대구=오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