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하면 끊을 수 없다"…그들이 계속 창업하는 이유 [긱스]

스타트업 창업가 중에는 이른바 'N차 창업자'가 적지 않습니다. 여러번의 창업 경험을 가진 '연쇄 창업자'를 말하죠.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 중에는 앞서 수차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업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매각한 후 재창업에 나서는 사례도 흔합니다.
이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원동력이 무엇 일까요? '3차 창업자'인 렌딧의 김성준 대표가 또 다른 N차 창업자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는 1998년에 설립되었던 컨피니티(Confinity)의 초기 임직원들을 일컫는 말로, 이 회사가 개발한 전자 송금 서비스가 바로 유명한 페이팔(PayPal)이다. 2002년 회사를 이베이에 매각한 후 이들이 세운 회사들은 테슬라, 링크드인, 팔란티어 테크놀러지, 스페이스X, 유튜브, 옐프 등 일부만 나열해도 대단하다.페이팔 마피아들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닷컴 버블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기저에는 페이팔이라는 회사가 가진 확고한 고유의 문화가 존재했다. 자신들이 만들어 낸 본연의 문화가 몸에 배인 초기 구성원들이 새로운 회사를 시작하고, 또 다시 새로운 그들만의 확고한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또 다른 페이팔들이 탄생해 온 것이다. 이들은 각자가 가진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하나의 회사가 만들어 낸 강력한 기업 문화를 공유하며 함께 발전해 온 창업가들의 이야기가 없을지 정리해 보고 싶었다. 얼른 떠오른 회사는 첫눈과 태터앤컴퍼니, 그리고 올라웍스다. 그래서 이 3개 회사 출신의 창업자 3인에게 이메일 질문을 보내 보기로 했다. 마침 평소부터 창업과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던 분들이기도 하다. 먼저 창업한 이유 부터 질문해 보았다.
렌딧 김성준 대표가 국내 유수의 스타트업 대표 3명에게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창업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사진은 왼쪽부터 김창원(타파스미디어)・남세동(보이저엑스)・김태훈(딥핑소스) 대표
“한국의 앞선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세계화 시켜보고 싶었다. 내가 그 일을 해보자고 결심했고, 가장 자신있는 모바일 컨텐츠 분야의 웹툰, 웹소설 분야를 선택해 창업했다.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창업자)”“좋은 회사는 물론 많다. 하지만 내가 믿는 핵심가치와 경영철학을 가진, 내 기준에서의 더 좋은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보이저엑스의 핵심가치는 ‘사용자, 팀워크, 성장'이고, 경영철학은 의지경영과 투명경영이다. (보이저엑스 남세동 창업자)”

“첫 창업 회사가 인텔에 인수되어 AI관련 기술 개발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개인정보라는 화두가 대두되었고, AI 연구에 있어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없는 데이터를 위한 새로운 회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창업하게 되었다. (딥핑소스 김태훈 창업자)”

각자 창업한 분야와 실현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 창업의 이유는 같았다. 어느날 어떤 문제를 발견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 보니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창업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발견한 문제는 내 손으로 해결해 내겠다는 것.

필자가 렌딧을 창업한 이유 역시 ‘1금융권과 2금융권 사이에 존재하는 금리절벽으로 인해 중금리대출이 부재하다.’는 금융산업의 문제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결심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에서 기술과 금융이 융합된 새로운 금융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곧바로 함께 시작할 동료를 찾아냈다. 처음 대출 산업의 문제점을 발견한 후 렌딧 법인을 설립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약 100일에 불과했을 정도다.필자를 포함한 창업자 4명에게는 ‘창업의 이유'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강렬한 성공의 경험을 공유한 초기 스타트업을 거친 창업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학창 시절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커다란 임팩트를 만드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 답이 생명공학자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과학고를 거쳐 KAIST에 진학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선배들과 시작했던 주말 스터디 모임에서 ‘창업’과 ‘스타트업' 이라는 새로운 진로를 알게 되었다. 5~6명의 선배들과 주말마다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던 모임이, 1년 만에 올라웍스라는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함께하게 되었던 것이다. 올라웍스는 이미지 인식 기술(Vision Technology)을 기반으로 장소/사람/사물/시간 등을 인식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하는 올라로그(olalog)라는 소셜미디어를 만들어 냈다. 아직 아이폰이 탄생하기 전인 2006년이었음을 감안할 때 매우 앞선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였던 셈이다.

아주 소수의 팀이 단기간 동안 그토록 파급력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함께한 당시의 경험은, 필자가 이후 3번의 창업을 거듭하는 데에 있어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었다. 올라웍스의 공동창업자이자 개발본부장이었던 딥핑소스의 김태훈 대표 역시 “창업 후에는 모든 일들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경험을 계속하게 되는데, 올라웍스 경험 덕분인지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계속 다른 방법을 찾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며 올라웍스의 경험이 없었다면 창업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보이저엑스의 남세동 대표는 첫 회사였던 네오위즈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보이저엑스의 핵심가치인 ‘사용자, 팀워크, 성장’과 경영철학인 ‘의지경영’과 ‘투명경영’ 이 모두 네오위즈 시절부터 몸에 자연스럽게 베어버린 것들을 정리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타파스미디어의 김창원 대표도 마찬가지다. 2006년 노정석 대표와 태터앤컴퍼니(이하 TNC)를 공동창업했던 김대표는 “삼성전자 출신으로 TNC가 첫번째 경험한 스타트업이었다. 특히 엔지니어, 디자이너들과 직접 프로덕트를 기획부터 시작해 만들어 보았던 경험이 재미도 있고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세 창업자가 거쳐온 첫눈(2006년 네이버가 인수), TNC(2008년 구글이 인수), 올라웍스(2012년 인텔이 인수)는 모두 세계적인 IT기업에 인수되어 국내 스타트업에서 기념비적인 엑시트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세 회사 모두 장병규(현 크래프톤 의장,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창업), 류중희(퓨처플레이 창업), 노정석(현 비팩토리 대표, 패스트트랙아시아 공동창업) 등 창업자들이 엑시트 이후에도 창업과 더불어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투자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들 기업에서 근무했던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이후 창업을 하거나 여러 스타트업의 주축 멤버로 합류하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딥핑소스의 김태훈 대표는 이메일 답변에서 “창업을 고민하던 시점에 인텔에 인수된 후에도 같이 일했던 류중희 대표와 김준환 대표는 이미 창업을 한 상태였고, 올라웍스 초기 멤버였던 김성준 대표도 렌딧을 창업해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었다.”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회사들이 빠른 템포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나도 다시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전 회사의 동료들이 현재 창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다. 혹시 누가 알까?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새로운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ex-첫눈, TNC, 올라웍스 구성원들이 있을지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 창업자들이 내재하고 있는 스타트업에서의 성장의 경험은 무엇일까? 김창원 대표는 “자기가 하는 일이 즉각적으로 유저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점, 한가지가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경험하면서 스스로의 성장을 빠르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남세동 대표는 “가장 먼저 경제적으로 더 큰 보상, 그리고 업무에 대한 더 넓은 경험, 회사에 대한 더 큰 영향력,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더 큰 책임과 권한을 얻을 수 있는 점"이라고 이야기했다.

김태훈 대표는 “많은 기회에 대한 선택권이 주어진다.”며, “본인이 할 수 있다면 여러 직군의 일을 할 수도 있고,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한가지 일에 몰입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체계를 잡아가야 하는 초기 단계인 만큼 더 다양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시야가 넓어지고, 일을 잘 해 낼 수록 더 많은 것을 리드하고 책임질 기회가 생긴다는 점”도 스타트업이기에 마주할 수 있는 성취감으로 꼽았다.

필자의 경험도 비슷하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언제나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훨씬 더 일을 밀도있게 경험하게 되고, 모두가 함께 성장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조직들이었다. 자율적인 문화 속에서 많은 책임을 가져갈 수 있다 보니, 본인의 역량에 따라 훨씬 더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또한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문화는 시행착오에 대한 포용력이 넓은만큼, 더 많은 시도를 하면서 스스로 더욱 성장을 꾀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함께 이루어낸 성장의 기억과 우리로 인해 일어나는 세상의 변화를 느끼는 경험은 꽤나 강렬하다. 나와 다른 사람 5명이 모이면 100의 결과물이 나오고 여러 사람들을 위한 좋은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체험은, 누군가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외우는 그저 주문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이라고 부르지 않나.

두 달에 한 번 씩 진행하는 회사의 신입 직원 오리엔테이션에서 늘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회사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낸 혁신의 문화를 지니고 나가 또 다른 혁신 조직을 만들어 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아직 우리는 목표한 골(Goal)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풀다 보면 반드시 목표한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뚜렷한 목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첫눈, TNC, 올라웍스의 구성원들이 지나온 10여 년을 돌아보며 가까운 미래에 렌딧 마피아가 탄생하게 될 날을 꿈꿔 본다.
렌딧 | 김성준 대표
3차례의 창업 경험을 가진 연쇄 창업가. 첫 창업은 2009년에 했던 기부의 일상화를 위한 사회적 기업 1/2 프로젝트. 두번째는 2011년 스탠포드 대학원 재학 중 창업 수업에서 만난 팀과 함께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했던 스타일세즈(StyleSays)다. 세번째 창업한 렌딧은 사업 자금 마련을 위해 한국에 돌아와 개인 대출을 해 본 경험을 통해, 중금리대출이 부재하다는 사회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창업한 회사다.

대학 시절이었던 2006년에 2012년 세계적인 IT기업인 인텔에 인수된 AI 스타트업 올라웍스의 초기 디자이너로 참여하며, 스타트업이라는 미래에 눈떴다. 실리콘밸리에서 경험한 창업가 정신과 혁신적인 조직의 기업 문화를 렌딧에 이식하고 적용, 전통적인 금융 인재들과 혁신적인 IT 인재들이 성공적으로 융합한 테크핀(TechFin) 조직으로 성장시켜 나가고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졸업한 뒤 KAIST에서 산업디자인 전공했으며, 스탠포드대학원 기계과 프로덕트 디자인 석사 전공 도중 자퇴하고 스타일세즈(StyleSays)를 창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