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모모'의 저자가 건네는 환상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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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엔데의 글쓰기독일 환상문학의 거장 미하엘 엔데(1929~1995)의 작품은 전 세계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시간 도둑으로부터 친구들의 삶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소녀의 이야기 《모모》와 마법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간 소년의 이야기 《끝없는 이야기》 등이 대표 작품이다. 그의 소설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독자를 낯설고 넓은 세계로 인도한다.
미하엘 엔데 지음
다무라 도시오 엮음
김영란 옮김 / 글항아리
316쪽│1만6000원
《미하엘 엔데의 글쓰기》는 다양한 환상 세계를 그려낸 미하엘 엔데가 친구이자 번역가인 다무라 도시오와 나눈 대화록이다. 인터뷰를 한 다무라는 엔데와 대화를 나눴던 시간에 대해 “미하엘 엔데라는 정원을 무작정 거니는 것만 같았다”고 추억한다.두 사람은 엔데의 집이나 병원 등에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책의 각 장 제목에 등장하는 ‘글쓰기’ ‘유년기’ ‘사색’ ‘꿈’ ‘죽음’ 등에 대한 엔데의 생각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엔데는 대화를 통해 그의 작품뿐 아니라 뮌헨 슈바빙의 예술지구에서 보낸 어린 시절, 나치 치하 독일에서 목격한 폭력, 연극학교에서의 배움 등 삶의 순간들을 회고한다.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엔데가 일상 속에서 어떻게 삶을 통찰하고 그것을 작품 세계에 반영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엔데 작품의 본질은 ‘이야기’다. 그는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 여행 중 팔레르모 광장에서 만난 이야기꾼이 읊어주던 소설을 듣고 “한 세기가 지난 뒤에도 메르헨(독일어로 동화라는 뜻) 이야기꾼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엔데는 자신의 책이 여덟 살부터 여든 살까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그가 그려낸 수많은 환상의 나라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과 탐구심을 가져다준다. 좋은 환상은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준다. 엔데가 그리는 마법이 단순히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게 만드는 상징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이 책에서 엔데가 이야기만큼 자주 언급하는 주제는 바로 현대사회에서 사라진 ‘정신성’이다. 그는 물질적 가치만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를 비판하고, 현대사회가 환상이나 영성 등 정신적인 가치를 폄훼하는 걸 경계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을 현대 과학체계 안에서만 해석하려는 태도에 대해 선입견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과학 지식이 만드는 경계 너머에서 세상을 보려는 태도가 우리 삶을 보다 깊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