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중국집과 차이니스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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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장 ohdy@kosi.re.kr10여 년 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쯤이다. 친구가 뜬금없이 중국집을 개업한다고 연락이 왔다. 중국 주재원으로 일하다 명예퇴직한 친구였다. 걱정이 앞섰다.
개업식에 갔다. 중국집은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었다. 산비탈에 들어선 재개발 아파트다. 아파트 단지 길 건너에 낙후한 동네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동네에 친구가 프랜차이즈의 힘을 빌려 중국집을 개업한 거다. 유명 프랜차이즈라 걱정이 덜어졌다. 프랜차이즈에서 식자재, 레시피는 물론 주방장도 공급해 준단다. 배달은 없고, 손님이 직접 식당으로 와서 시켜 먹는 방식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중국집이 아니라 차이니스 레스토랑이었다.개업식은 꽤 북적였다. 화환이 줄지어 서 있고, 친구들은 다들 덕담을 건넸다. 근데 난 생각보다 전망이 밝지 않다고 했다. 잘 대비하라고 일렀다. 개업 날 그런 얘기를 한다고 친구들은 날 나무랐다.
내 심기를 건드린 건 아파트 단지 길 건너의 동네 중국집이었다. 중국집 앞엔 배달 오토바이가 두 대나 있었다. 친구의 차이니스 레스토랑과 동네 중국집의 메뉴는 별 차이가 없었다. 가격은 차이니스 레스토랑이 더 비쌌다. 낙후 수준을 볼 때 아랫동네 사람들이 아파트 상가까지 와서 더 비싼 차이니스 레스토랑의 짜장면을 먹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차이니스 레스토랑 고객은 700여 가구 아파트 주민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소득 수준이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다.
얼마 후 친구는 가게가 잘된다고 싱글벙글했다. 난 소위 ‘개업발’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타일렀다. 안타깝게도 개업발은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친구와 통화했는데 주방장이 그만둬서 직접 중국요리 프라이팬인 웍을 잡는다고 했다. 요리 한번 해본 적 없는 친구였다. 친구의 중국과의 인연은 주재원 경력이 전부였다. 차이니스 레스토랑은 2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차라리 중국집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빚지진 않았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단다.
코로나 위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지금은 물가와 금리가 최악이다. 창업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위기가 끝나면 항상 ‘창업 붐’을 경험했다. 외환위기 때도 그랬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그러니 코로나 위기가 사라지면 조만간 창업 붐이 일어날 거다. 지금 예비창업자들은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상권을 분석해야 한다. 정부도 창업 붐이 일 때 돈으로 하는 단순 지원보다 지금 예비창업자 교육에 더 집중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