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예측, 내가 틀렸다"…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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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NYT에 공개 사과 칼럼“내 인플레이션 예측은 틀렸다(I was wrong about inflation).”
바이든의 1조9000억弗 규모
부양책 관련 예측 오류 인정
"물가 영향 작을 것" 전망했지만
41년 만에 최악 인플레 덮쳐
NYT 각 분야 칼럼 필진 8명
'내가 틀렸다' 시리즈 게재
韓선 '소주성' 부작용 지적에도
정책설계자 등 별다른 반응 없어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이 같은 제목의 기고문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다. 세계적 석학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뉴욕타임스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가치 있다”고 썼다. “크루그먼 교수의 지적 정직함과 엄격함에 감명받았다”는 외신 평가도 나왔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모델 적용은 잘못”
크루그먼 교수는 이날 기고문에서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책으로 마련한 1조9000억달러(약 2498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썼다. 당시 그는 대규모 재정지출에도 물가가 크게 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계는 소비보다 저축할 가능성이 높고, 주 정부와 지방정부가 재원을 점진적으로 사용해 시중 통화량이 급증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그러나 미국은 지금 41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9.1% 급등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코로나19가 변수였다고 서술했다.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서비스 대신 상품 지출을 늘리는 등 소비 패턴이 달라졌다. ‘대퇴사의 시대’에 이민자까지 급감하면서 일손이 부족해 생산도 줄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과거의 경제 모델들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과거 모델을 적용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가 만든 새로운 세상에서는 안전한 예측이 아니었다”고 시인했다.크루그먼 교수는 또 다른 경제학 석학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하버드대 교수)과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 전망을 두고 수차례 설전을 벌였다. 서머스 전 장관은 지난해 초부터 “경기 부양책이 한 세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바보’ ‘정치꾼’ 등 원색적 단어까지 쓰며 서머스 전 장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국 학계 풍토는 미국과 달라
뉴욕타임스는 이날 크루그먼 교수를 포함한 8명의 칼럼 필진이 제각기 다른 주제로 쓴 ‘내가 틀렸다’ 시리즈를 공개했다. 크루그먼 교수처럼 지난 칼럼 등에서 밝힌 자신의 의견 중 틀린 부분을 인정하는 형식이다. 뉴욕타임스는 “우리는 심각한 내용뿐 아니라 아주 사소한 내용에 대해서도 입장을 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던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고 공개 석상에서 인정했다. 그는 지난달 CNN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와 식품 가격 상승, 공급망 병목 현상 등으로 경제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다”며 “인플레이션 향방에 대한 나의 과거 예측은 틀렸다”고 말했다.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은행이 지난달 공개한 ‘한국의 노동시장 경직성과 다국적 기업의 유연한 해외 업무 재할당’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매년 10% 이상 올린 2017~2019년 해외에 자회사를 둔 국내 제조업체들이 총 3만5018개의 일자리를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으로 옮겼다.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오히려 일자리를 감소시켰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학계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이 있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학계 관계자는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한 홍장표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 관계자들의 별다른 코멘트가 없다는 게 아쉽다”며 “한국에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 풍토가 만연하다”고 아쉬워했다. 문 정부의 첫 청와대 경제수석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홍 전 원장은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퇴를 종용한다며 반발하다가 결국 사표를 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