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지났어도 도망가는 꿈"…끝나지 않은 삼청교육대 악몽

피해자들 인터뷰…"누가 또 잡으러 올까 불안해 수십 번 이사다녀"
"절대 반복돼선 안 되는 역사, 국가가 잘못 인정해야"
"4주만 버티면 나가게 해주겠다더니 1년을 이리로 저리로 끌고 다녔지. 그때 끌려가지 않았으면 배우던 타일 기술을 익혀서 기술자로 잘살고 있었을 텐데…."
배철수(67) 씨는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그 날이 4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루도 빠짐없이 꼭 한 번씩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1980년 8월 부산에서 파출소에 붙잡혀 간 친구를 기다리던 중 조사가 길어지자 이에 항의하러 파출소에 들어갔다가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그대로 구금돼 순화 교육 1년 처분을 받았다.

배 씨는 "군부대로 끌려가 '원산폭격'을 받았고, 못 버티면 못 버틴다고 구타당했다"며 "한겨울 물웅덩이에 두껍게 언 얼음을 부수고 들어가서 버티는 기합도 받았다"고 했다.

경찰서 구금부터 훈련소 입소, 군부대에서의 근로봉사와 보호감호 등 모든 과정에서 그에게 이유를 설명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삼청교육대에서 나오고 나서도 누가 나를 잡으러 올까 봐 불안한 마음에, 집을 구해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 이사 다녔다"며 "구타 후유증으로 몸이 아파 꾸준하게 일도 못 하고 일용직만 전전하면서 푼돈 벌이만 해왔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억울한 세월을 보내고 두려움의 터널을 지나 이제는 숨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인권침해 피해를 봤다는 진실규명 결정을 최근 받았다.
24일 연합뉴스가 만난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은 모두 "이미 지나간 세월은 어쩔 수 없지만, 잘못하지 않은 일로 억울하게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임운택(61) 씨도 1980년 8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1년 후 출소했다.

그는 당시 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문과 잡지를 팔며 생활하다가 퇴근 후 터미널 앞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던 중 영문도 모른 채 경찰들에게 연행됐다.

'버스 승객들에게 껌을 강매했다'는 취지의 거짓 자술서를 쓰도록 강요당한 임씨가 저항하자 경찰관 2명은 그를 구타하면서 "4주만 갔다 오면 되는데 그것 하나 못 쓰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임씨는 "경찰한테 두들겨 맞고 강제로 지장을 찍고 난 뒤 제39사단으로 끌려갔다"며 "한 달만 버티면 내보내 준다고 해 구타와 훈련을 견뎠지만, 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지장 찍기를 강요당했고 근로봉사와 보호감호까지 받아야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삼청교육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다들 어떻게든 알게 되니 아이들을 키우기가 힘들어 스물몇 번 이사를 다녔다"며 "회사에 다니고 싶어 이력서도 많이 냈지만, 중범죄자 취급을 받아 번번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삼청교육대에 두 번 끌려간 한강태(65) 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품 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 하나를 꺼내 보였다.

닳고 해져 테이프로 붙이고 비닐봉지에 싸서 다니는 삼청교육대 수료증이었다.

한씨는 "언젠가는 내 억울함을 밝힐 수 있겠지 싶어 항상 수료증을 품고 다녔다"며 "삼청교육대에 같이 끌려갔던 친구 2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게 한이 돼 수료증을 계속 가지고 다닌다"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당시 전과 하나 없던 그는 새벽에 집에서 잠을 자던 중 구둣발로 들어온 경찰관들에게 이유도 모른 채 잡혀갔다.

나중에 듣게 된 이유는 '전과자들과 어울렸다'는 것이었다.

그는 "개,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인간이 자기와 아무런 악감정도 없는 사람을 명령이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패는 것을 보고 사람이 무서워졌다.

나온 이후로도 황폐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는 1980년 11월 출소했지만, 20일 만에 특수절도 혐의로 교도소에 끌려갔다.

친구 아버지 차를 빌려 일을 보러 다녀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삼청교육대를 다녀온 사람이 다시 교도소를 가니 교도관들이 '삼청을 갔다 와서도 정신을 못 차렸다'면서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른다"고 회고했다.

40여 년이 지났지만 정신적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구타당해 아픈 몸은 병원에 다니면서 많이 치료됐지만, 맞아 죽는 사람을 본 충격에 자다가도 맞는 꿈, 도망가는 꿈을 꿔 여러 번 가위에 눌린다"고 했다.

"가끔 '삼청교육대가 다시 생겨서 불량한 놈들을 싹 쓸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삼청교육대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불구가 된 분들, 여전히 공포감에 숨어 사는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이와 같은 일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