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배터리 재활용…세계 각국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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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자동차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사용 연한이 다한 배터리의 처리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 미국, 중국 등 각국은 폐배터리 회수와 처리를 위한 제도와 표준 제정에 가속 페달을 밟는 중이다. 전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33%를 생산하는 능력이 있는 우리나라도 배터리 순환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할 때다[한경ESG] 이슈 브리핑세계 각국이 전기차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21년 전 세계 전기차(EV) 판매량은 전년 대비 2배 증가한 660만 대에 달했다. EU는 2050년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교통 부문 배출량을 90% 저감해야 하지만, 배터리 생산만으로도 배출량의 절반을 차지할 우려가 있다 보니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 및 운행을 잇달아 금지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유로모니터는 2040년 배터리 전기차(BEV)가 2020년 대비 약 32배 증가한 1억400만 대 판매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사용 연한이 다 된 배터리의 처리 문제다. 자동차 배터리에는 각종 중금속과 전해액이 포함되어있어 그냥 매립하면 심각한 토양오염을 일으킨다.EU는 그린딜 정책 아래 전기차 배터리를 순환경제 실현의 핵심 품목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배터리 사용 지침의 규제 대상에 전기차 배터리를 포함시키고, 사용 후 전기차 배터리를 재제조, 재사용, 재활용하도록 기존의 지침을 손보고 있다. 즉 전기차 배터리에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앞으로 그 사용 비율을 높여나가겠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EU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배터리의 생산, 사용, 재사용, 재활용에 이르는 각종 정보를 이해당사자 간 공유하는 배터리 여권 제도를 도입한다. 투명하고 윤리적인 배터리 원자재 수급, 탄소발자국 공개, 나아가 재활용을 위한 종합적 체계를 잡고 세계 표준을 선도하기 위한 노력이다.
EU 순환경제 핵심 품목, 전기차 배터리
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것은 비단 환경적 이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배터리의 급격한 수요 증가는 배터리 제조의 핵심 원료인 니켈, 망간, 코발트 등 희소금속에 대한 수요도 함께 증폭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희소금속을 보유한 광산은 한정적이고 특정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아 종종 가격 불안정 및 공급 불안의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수명이 줄어든 배터리를 발전소나 충전소 등에서 전력 보조장치, 가정용 ESS 등에 재사용하거나 재활용 기술을 활용해 희소금속을 추출한 후 새 배터리를 제조하는 데 다시 사용하면 생산비 절감은 물론 안정적 공급망 확보가 가능해진다.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공급망 100일 검토를 통해 전기차 등 핵심 분야의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2019년부터 폐배터리 재활용 인프라에 2050만 달러를 투자해온 미국은 2차 사용 및 재활용 관련 사업에 6000만 달러를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최근 미국 내에서 확대되는 전기차 및 배터리 관련 인프라는 제조뿐 아니라 재활용 공정까지 염두에 두고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다.
환경에도, 공급망에도 도움이 되는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은 경제적으로 어떠한 이득을 가져다줄까? 2020년 기준 NCM811 배터리의 셀 제조 비용 중 재료비 비중은 71%를 차지하는데, 배터리 원료를 추출해 재활용함으로써 재료비를 아낀다면 그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4kWh급 삼원계 배터리는 재활용 시 한 팩당 600~900달러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 또 광산에서 발견되는 최고 등급의 리튬 농도는 2~2.5%인 반면, 재활용해 추출한 리튬 농도는 직접 채굴하는 경우보다 4~5배 높은 고농도 원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배터리를 재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필요한 전제 사항이 있다. 400~600kg에 육박하는 전기차 배터리는 신속하고 안전한 해체를 위해 자동화 해체 시스템이 필요하고 금속 회수 공정을 위한 시설투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투자비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배터리 회수량이 확보되어야 한다.중국은 폐배터리 회수량이 일정 규모를 이룰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 추진의 영향으로 2021년 중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전 세계의 51.5%에 해당하는 세계 1위다. 그러다 보니 전기차 폐배터리의 규모도 2021년 25.2만 톤으로 예상되는데, 9년간 연평균 28.3%씩 성장해 2030년에는 237.3만 톤에 달할 전망이다. 폐배터리를 잘 회수하기 위해서는 회수 주체를 정하고 책임 있는 회수를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은 2016년부터 배터리 정책 속도
중국은 2016년부터 전기차 배터리만을 위한 별도의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회수 이용 기술 정책’(2016년)을 통해 배터리 등록번호 제도를 시행하고, ‘신재생에너지 자동차 동력 배터리 재활용 관리 잠정 방법’(2018년)에서 자동차 생산 기업에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의 주체적 책임을 부여했다. 또한 같은 해 베이징과 상하이를 포함한 17개 지역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배터리 제조사, 중고차 판매상, 폐기물 회사와 공동으로 폐배터리 회수 및 재판매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히 중국은 배터리의 규격, 등록, 회수, 보관, 운송, 잔여 성능 검사, 해체 등 각 단계별로 국가 표준이 제정되어 있어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 불이익이나 처벌을 받는다.지난 6월 15일, 우리나라는 국가표준원을 중심으로 ‘1차 사용 후 전기차 배터리 표준화 협의회’를 발족하고, 재활용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표준화 대상에 대해 전문가 간 논의를 시작했다. 이미 우리나라는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33%를 생산하는 능력이 있다.
재활용 면에서도 일부 재활용업체에서 전공정(물리적 처리)과 후공정(습식 제련)이 모두 가능한 기술과 인프라를 갖췄으며,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처리를 위해 기술개발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정책적 법제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과 관련한 각종 기준과 표준 설정의 첫 단계는 어느 정도 성능이 남은 배터리를 각각 재사용, 재활용하기로 할 것인지의 기준 설정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잔여 성능을 측정하는 기술개발과 표준화가 필요하다. 같은 해 제조한 동일 브랜드의 배터리라도 운전자의 사용 습관, 충전 주기, 기후 등의 사용 환경에 따라 일정 기간 후 배터리의 잔여 성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이 세 단어는 탄소중립 시대에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핵심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각국이 지향해야 할 배터리 순환생태계 구축의 선두 국가가 되기 위해 정부의 관심과 표준 제정 그리고 지속적인 R&D에 대한 투자를 향해 가속페달을 밟을 때다.
김희영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