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 직업계高서 '반도체 전사' 10년간 5000명 키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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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인터뷰 - 조희연 서울교육감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요즘 부쩍 수학교육, 에듀테크(교육+정보기술), 인공지능(AI) 등을 강조하고 있다. 흔히 지식교육보다 전인(全人)교육을 앞세운다고 알려진 진보적 교육관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조 교육감은 지난 20일 종로구 서울교육청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진보 교육계가 수학·과학 교육을 경시한다는 인식을 깨고 싶다”며 “AI·빅데이터 시대에는 무엇보다 수학을 기본교육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의 반도체 인재 양성에도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교육 목표가 과도하게 산업 인재 양성으로 협소화하는 건 우려하지만, 반도체 인재 확보가 시급하다는 데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했다.
尹정부 반도체 인재 양성에 적극 협력할 것
AI·빅데이터 시대에는 수학이 기본교육 돼야
수학이 즐거운 '수호자 프로젝트'도 추진
분노 과잉 사회, 상대 입장 수용하는 공존 중요
'돌봄공사' 등 보수 후보 공약도 반영하겠다
만난 사람=이관우 사회부장
조 교육감의 변화는 6·1 지방선거에서도 나타났다. 3선에 성공한 조 교육감은 이번 임기의 키워드로 ‘공존(共存)’을 내걸었다. 명함에도 이름 앞에 공존이란 단어를 크게 새겼다. 보수·진보 진영을 떠나 상대방 입장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는 “민주주의에는 투쟁의 정치가 있고 공존의 정치가 있다”며 “우리 사회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진 만큼 이제는 양보와 타협으로 공존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최근 수학교육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계기가 있습니까.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비판적, 논리적인 사고 형성과 세상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수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서울 시내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말을 없애고 싶어요. 이를 위해 서울교육청에서는 수학 강화 프로그램 ‘수호(數好)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체험활동과 결합해 수학을 배우는 수학점핑학교, 서술과 논술 평가로 성적을 내는 수학평가선도학교 등을 통해 학생들의 수학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겠습니다.”
▷정부의 반도체 인재 양성안에 어떻게 협력할 생각입니까.“서울교육청은 정부의 반도체 인력 양성에 적극 호응할 방침입니다. 특히 직업계고 학생들이 반도체산업의 중간 전문인력으로 폭넓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서울 직업계고에서만 10년간 5000명 정도를 양성할 계획입니다. 또 선도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를 거점학교로 지정해 학교 간 협력체제를 구축하겠습니다. 교육과정을 공유하고 수업평가를 혁신해 디지털 기반의 직업교육을 확산할 예정입니다. 마이스터고인 서울로봇고가 고교학점제 학교 밖 교육과정으로 한국산업기술대와 연계해 반도체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반도체 인재 양성안에 우려의 목소리도 냈는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반도체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는 입장에 동의합니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서 반도체산업의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죠. 개별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교육이 산업 발전의 도구가 돼야 한다는 식의 1970년대 언어들이 사용되는 걸 걱정하는 겁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그 단계를 많이 넘어섰어요. 공교육은 직업인을 양성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전인적인 성장을 유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수학과 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교육을 도구화하는 것은 구분해서 다르게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번 임기에 ‘공존의 교육’을 내세웠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독재시대에는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투적으로 싸워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지금은 전투적인 개인만 남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사회처럼 돼버린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분노 과잉 사회죠. 의견의 차이가 신념의 차이가 돼버려서 양보와 타협의 공간이 사라졌습니다. 이념을 떠나 상대방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사례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젠 공존의 정치로 민주주의를 이해해야 할 때입니다.”
▷6·1 지방선거 때 교육감 후보들이 비슷한 공약을 많이 내놨습니다.“우리 사회에 갈수록 공존의 주제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좌·우가 다같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그만큼 늘어난 거죠. 이번 3기에선 서울 교육의 발전을 기원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정책을 수립하겠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경쟁했던 교육감 후보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박선영 후보의 돌봄공사 공약이 대표적입니다. 돌봄과 방과 후 학교에 대한 질적 향상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꼭 필요한 공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법률 체계에서 교육청의 공기업 설립은 불가하지만 향후 공감대가 확산하면 법 개정까지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지방교육교부금을 대학에 배분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전국의 모든 교육감이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보수 성향 교육감들도 같은 입장이에요. 세제는 세수가 많이 걷혔을 때를 기준으로 정하면 안 됩니다. 교부금은 내국세와 연동돼 경기 변동의 영향이 크고 예측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황기를 위해 적립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동생 돈 뺏어 형 주는 식으로 해선 곤란해요.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교부금을 축소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미래 교육을 위한 수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더 적극적인 교육재정 투자를 통해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여건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작년 그린스마트학교 사업에 서울 시내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했습니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은 40년 이상 된 노후 학교 건물을 개축 또는 리모델링해 안전하고 쾌적한 학교를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미래 교육과정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유연한 미래 교육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핵심입니다. 지난해 일부 학교에서 혁신학교의 전 단계라든지, 스마트 기기 중독을 유발한다든지 등 잘못된 정보로 인해 학부모 반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에 대한 홍보 등을 통해 올해는 그런 반대 사유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오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좋은 시설의 미래형 학교가 조성되면 분명히 만족도 및 그 학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장기화하면서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심해졌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해결책이 있습니까.
“서울시 공교육의 수장으로서 저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초학력은 학생의 인권문제이기도 합니다. 저는 코로나19 이전에도 기초학력 강화를 꾸준히 강조해왔습니다. 서울교육청은 교실 내, 학교 내, 학교 밖 등 3단계 학습안전망을 보다 촘촘하게 설계해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개별 맞춤형 수업이 가능하도록 인공지능 활용 수업, 에듀테크 도구들을 적극 활용한 교사의 개별 피드백 강화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일제고사 부활 등을 얘기하지만 과거처럼 획일적이고 강력한 권위를 이용해 학습능력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고 봅니다. 요새 아이들이 받아들이지도 않고요. 지금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각계의 지적을 경청하면서 기초학력을 강화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 약력△1956년 전북 정읍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연세대 사회학 석·박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영국 랭커스터대, 대만 국립교통대 초청교수
△참여연대 창립, 사무처장·정책위원장·집행위원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제20·21·22대 서울교육감
정리=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