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軍에서 피흘린 '초콜릿 군인'들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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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지난해 부커 국제상(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은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가 출간됐다. 이 책은 200여 쪽, 프랑스어 원작도 150여 쪽에 불과한 중편소설이다. 그런데도 2018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각종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20년 영어로 번역돼 지난해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는 등 세계 문학계를 들썩이게 했다. 짧은 분량을 무색하게 하는 강렬한 내용 덕분이다.
지난해 부커 국제상 수상
1차대전 佛 군대에 끌려간
세네갈 청년들의 비극 그려
프랑스인 어머니와 세네갈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작가 다비드 디옵(56·사진)은 이 책에서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프랑스 군대에 입대한 세네갈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초콜릿 군인’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이들이다. 독일과 전쟁 중이던 프랑스군은 세네갈 등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시민권과 연금 등을 미끼로 청년들을 모집했다. 적을 겁주기 위해 야만적으로 싸우기를 주문했고, 총알받이 정도로 생각해 위험한 임무에 먼저 투입했다. 그렇게 아프리카 청년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작가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를 갓 스물이 된 세네갈 청년 알파의 눈으로 풀어낸다. 늙은 부모님을 편히 모실 수 있는 연금을 받을 꿈에 부풀어 입대했지만, 동반 입대한 소꿉친구 마뎀바가 전장에서 중상을 입으면서 잔인한 현실에 눈을 뜬다. 마뎀바는 고통을 덜기 위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지만 알파는 거절한다. 친구는 고통 속에 죽고 알파 역시 자신의 비겁함을 자책하며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그는 매일 밤 적진에 잠입해 독일군을 살해하고 손을 잘라 돌아온다. 동료 병사들은 처음엔 환호했지만 그런 일이 되풀이되자 무서워한다. 알파가 악마에 씌었다고 수군대고, 그를 전장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전쟁이 한 영혼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는 여러 소설과 영화에서 다뤄졌다. 주로 영국과 프랑스, 미국과 독일인의 시선이었다. 이 식민지 청년의 이야기는 새로운 아픔과 비극을 일깨워준다.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 대신 의식의 흐름을 시적인 문장으로 풀어낸 것도 특징이다. 독자는 알파의 머리에 들어간 듯 그가 생각하고 느낀 바를 그대로 체감할 수 있다.디옵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세네갈에서 보냈다.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는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1차대전에 참전했던 증조부의 편지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